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암을 조기에 예방해 25년 안에 암 관련 사망률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프로젝트’를 재가동시킨 가운데 최근 암 백신 효과 임상이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기업도 암 예방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펼치면서 일각에서는 바이오 산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존 F. 케네디 박물관에서 ‘캔서 문샷암 이니셔티브’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조선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존 F. 케네디 박물관에서 ‘캔서 문샷암 이니셔티브’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조선DB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향후 미국 내 암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공표한 캔서 문샷 프로젝트의 주요 발판이 될 암 백신 연구가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캔서 문샷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있을 당시인 2016년부터 18억달러(2조5000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했지만 당시엔 큰 성과를 보지 못했으나, 지난해 2월 바이오 리쇼어링 행정명령을 통해 재가동된 프로젝트다.

캔서 문샷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다국적 제약사 MSD(미국 머크)와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모더나가 공동개발한 암 백신 중간 임상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모더나·MSD 암 백신 ‘병용요법’ 효과 성공적…환자 10명 중 8명 암 완치

미국암연구학회(AACR)를 통해 공개된 이번 임상은 면역항암제 mRNA(메신저리보핵산) 기반 항암백신 ‘mRNA-4157’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 펨브롤리주맙)’의 병용요법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임상2상이다.

임상은 뉴욕대 그로스만 의과대학교에서 3~4기 흑색종 환자 157명을 대상으로 암 백신 임상시험을 진행으며, 이 중 무작위로 107명을 선정해 환자 맞춤형으로 제작된 암 백신과 키트루다를 병용 투여했다. 나머지는 키트루다 단독요법을 시행했다.

그 결과, mRNA-4157·키트루다 병용요법은 12개월 무재발생존율(RFS) 83.4%를 기록, 키트루다 단독요법 치료받은 집단(77.1%)보다 유의미한 수준의 RFS 개선 효과를 보였다. 18개월 RFS 역시 병용요법이 키트루다 단독요법과 비교해 각각 78.6%와 62.2%를 기록하며 앞섰다. 즉, 병용요법 사용 시 환자 10명 중 8명의 암이 완치된 것이다.

암 재발 및 사망자 위험 예방 비율도 병용요법이 높은 결과를 얻었다. 치료 2년 뒤 병용요법 치료군 중 22%에서 암이 재발했거나 사망했다. 반면, 키트루다 단독요법 치료군에서는 40%가 재발 또는 사망해 병용요법이 단독요법 대비 암 재발 및 사망 위험을 44% 줄였다.

암 종양은 몸 속 면역세포가 건강한 세포를 구분하지 못해 생긴다. 면역 세포는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오면 공격하는데, 암 세포는 변이를 일으켜 면역 세포를 교란시킨다. 모더나와 MSD는 암 백신을 만들기 위해 환자 종양의 DNA시퀀싱(염기서열 분석)을 시도해 고유 돌연변이를 찾아 면역 세포가 이 돌연변이를 알아챌 수 있도록 백신을 설계했다.

이번 암 백신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활용된 mRNA 기술을 활용했다. 또한 맞춤형 치료제로 환자 1명을 위한 백신을 개발하는 데 6~7주 가량이 소요된다. 양사는 조만간 흑색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3상을 준비할 예정으로, 향후 폐암 등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는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암 백신 병용요법은 이미 지난해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우선심사(프라임) 대상으로 지정됐고, 올해 2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혁신치료제로 지정했다.

암 백신 개발 중인 국내 기업…암 조기진단 영역도 활발

현재 국내에서는 한미약품이 차세대 항암 파이프라인인 ‘KRAS 타깃 mRNA’ 암백신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올해 AACR을 통해 KRAS 타깃 mRNA 암 백신 전임상 결과 1건과 KRAS 활성을 막는 SOS1 억제제 HM99462의 전임상 결과 1건 등을 공개했다.

캔서 문샷 프로젝트 이미지. / 워싱턴 의과대학
캔서 문샷 프로젝트 이미지. / 워싱턴 의과대학
KRAS 변이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 중 하나로, KRAS 단백질은 세포 성장과 분화·증식·생존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의약품시장조사기관 퀵 리서치에 따르면 2028년까지 전 세계 KRAS 억제제 시장은 45억달러(6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약품은 KRAS 변이 비소세포폐암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mRNA 암백신을 투여한 결과, KRAS G12C를 발현하는 종양을 가진 마우스 모델에서 37%까지 종양 성장이 억제된 것을 확인했다. 치료군은 생검 후 종양 크기가 45.4%까지 유의하게 감소했다. 치료군의 42.6%는 면역반응이 증가했다.

HM99462와 관련한 전임상 결과도 공개했다. HM99462는 KRAS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SOS1 단백질의 결합을 억제하는 신약 후보물질이다. KRAS 변이 비소세포폐암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단독 투여 시 허용용량 내에서 종양 성장을 억제했다. 한미약품은 HM99462를 오는 2024년 초 임상에 진입시킬 계획이다.

캔서 문샷 프로젝트의 핵심인 암 조기진단 기술 ‘액체생검’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도전도 활발하다. EDGC(이원다이애그노믹스), GC지놈, 랩지노믹스 등이 액체생검 기반 조기진단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EDGC는 액체생검 ‘온코캐치’를 통해 암세포 유래 순환종양 DNA(ctDNA)를 검출해 초기에 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GC지놈은 cfDNA를 활용한 인공지능(AI) 기반 암 조기진단 검사를 개발 중으로, 2000명 이상의 암 환자와 정상인의 혈액에서 전장유전체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랩지노믹스는 고순도 cfDNA를 확보할 수 있는 추출 시약의 국내 인증을 획득, 세포유리 DNA 추출 시약 인증을 통해 암의 조기 진단·예후·예측·동반진단 분야의 다양한 고부가 진단서비스 및 제품을 개발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암 백신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바이오산업을 넘어 인류 생존 기간에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며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암 백신 및 진단기술 관련 개발에 적극 뛰어든 상태로, 머지않아 각국의 자국 중심 바이오기술 확보전이 펼쳐질 전망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