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 발언이 러시아 정부의 반발을 사면서 양국 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년 넘게 출구전략을 찾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전쟁 이전 각각 수조원에 달했던 러시아 시장 연매출에 제동이 걸린 것을 넘어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모스크바 하이드로프로젝트(Hydroproject)에 설치된 '갤럭시 Z 폴드2' 옥외광고 / 삼성전자
러시아 모스크바 하이드로프로젝트(Hydroproject)에 설치된 '갤럭시 Z 폴드2' 옥외광고 /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 가전, TV·디스플레이 사업에서 성장성이 높은 러시아 시장에서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전쟁 이후 러시아 현지법인의 공장 가동과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3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TV·모니터 공장 가동을 멈췄다. LG전자는 가전과 TV를 생산하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 가동을 지난해 8월 중단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러시아법인 매출은 2020년 3070억루블(5조원), 2021년 3610억루블(5조 8700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보이는 추세였다. 2021년 순이익도 935억 3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2022년 말 기준 삼성전자 러시아 법인은 48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전쟁 전인 2021년 말,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시장 점유율은 35%로 1위였지만 2022년 12월에 2%로 뚝 떨어졌다. 빈 자리는 샤오미(95%)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채웠다.

LG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서 거둔 매출은 2조 335억원이다. 그해 전체 매출의 2.7% 수준으로 전년 대비 성장률은 22%에 이르렀다. 전쟁 여파로 2022년 러시아 법인 매출액은 9445억원, 순손실 232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현지 LG전자 전시장에서 배우 글라피라 타르하노바(Glafira Tarkhanova)가 오브제컬렉션을 체험하고 있다. / LG전자
러시아 모스크바 현지 LG전자 전시장에서 배우 글라피라 타르하노바(Glafira Tarkhanova)가 오브제컬렉션을 체험하고 있다. / LG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현지 사업을 완전 철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러시아는 구소련 블록의 중심으로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까지 연결하는 시장이다. 정치적 이유로 한번 철수하면 재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최근 외국 기업들이 함부로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제재 조항을 신설했다.

로이터 등 외신은 러시아 재무부가 3월 27일(현지시각)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 매각 관련 조항을 새로 공고했다고 보도했다. ‘비우호국’ 투자자들이 사업체를 매각할 경우 시장 가치의 최소 10%를 ‘출국세’ 형태로 연방 예산에 기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러시아의 비우호국은 전쟁 발발 이후 대러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로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한국 주요 기업이 러시아 시장에서 주춤하는 사이 중국 기업이 점유율을 높이는 추세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오히려 한·러 관계 냉각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버티기에 들어가더라도 러시아 시장 내 경영 환경은 점차 악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성장을 기대했던 현지 시장 위축으로 인한 잠재 타격이 현실화 하고 있다"며 "사업 재개를 대비하며 현지 거래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