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권도형(사진) 테라폼랩스 대표. 권 대표와 신현성 전 차이 대표,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각각 ‘테라’와 ‘차이’로 갈라져 제 갈길을 갔지만, 결제 시장 혁신을 위한 '스테이블 코인' 개발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의기투합했다.

권도형과의 만남…안정적인 결제용 가상자산 구상

"신현성씨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였고, 여러모로 믿을 수 있겠다 싶었다. 권도형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는 소식들 들은 이후, 소개를 받아보니 깜짝 놀랐다. 스펙을 보고 사람이 맞나 싶었다. "

테라 프로젝트에 초기 투자를 제안받은 VC(벤처캐피털) 관계자의 권씨에 대한 첫 인상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인턴까지 거친 그의 화려한 경력은 테라팀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권도형씨는 꽤 오래전부터 언론에 등장했다. 그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재학 시절 입시정보 사이트를 개발해 기업에 매각했으며 처음으로 외고 연합 영자신문 동아리를 만들어 언론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영어만 쓰라"며 한국말로는 대화도 안했다는 그의 영어부심 또한 업계에 유명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시절 세계 고등학생 영어토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직접 영어토론 관련 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

스탠퍼드를 졸업한 권씨는 사회생활 첫 걸음으로 취업이 아닌 사업을 택한다. 대학 동문들과 모여 도전한 그의 창업 아이템은 와이파이 공유 서비스 ‘애니파이’다. 당시 그가 제안한 것은 모바일 기기들을 연결해 네트워크를 분산화 하는 P2P 기술로, 분산원장과 아이디어가 유사하다. 애니파이는 2016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기 단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정, 7억원의 국고를 지원받기도했다.

하지만 첫 도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통신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며 와이파이 공유 기술은 무용지물이 됐고 애니파이는 시장에 나오지 못한 채 사장됐다. 이후 신씨를 만난 권도형은 결제용 가상자산을 생각해 내고, 두 사람은 실생활에 사용할 가상자산을 만들자는 목표에 공감한다.

권도형은 2017년 10월 애니파이 대표직을 사임하고 테라 팀에 합류한다. 이 즈음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의 사업 총괄로 있던 권씨의 고등학교 동문 김경돈씨는 사업총괄로, 권 씨의 스탠퍼드 룸메이트였던 니콜라스 플라티아스는 테라의 리서치 헤드로 힘을 보탰다.

테라폼랩스에 모여든 사람들

테라팀은 2018년 4월 싱가포르에 테라폼랩스(Terrafom Labs)를 세운다. 당시 금융당국의 ICO(가상자산공개) 금지 방침으로 국내에서는 공개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법인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내 프로젝트들이 싱가포르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세웠다. 테라의 싱가포르 본사 역시 표면적으로 본사였을 뿐, 두 사람은 국내에서 사실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초기 테라 개발은 외부 인력 위주로 진행됐다. 싱가포르 테라 본사 설립 이후 한 달 뒤인 2018년 5월, 테라 팀은 국내 지사 역할을 할 가즈아랩스(현재 커널랩스)를 세우고 개발자들을 영입한다. 가즈아랩스의 초대 대표로는 신씨와 권씨의 만남을 주선한 최준용씨가 이름을 올렸다.

테라의 개발은 대부분 가즈아랩스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재직하던 한 직원은 "가즈아랩스는 테라폼랩스 코리아와 같은 건물 작은 사무실에 위치했고, 병역특례 개발자들 몇 명이 있었다. 두 개로 나뉘어져는 있었지만 개발자들은 양쪽을 오가며 근무했다. 실제로는 같은 회사였다"고 말했다.

가즈아랩스 초창기 멤버인 개발자 김현중씨와 김한주씨는 처음에는 외주 인력으로 들어왔다. 김현중씨는 초등학교 때 게임 개발을 시작해 웹젠에 게임사를 매각한 ‘천재 개발자’로 도 유명했다. 그와 함께 들어온 김한주씨 역시 개발자 출신으로 김현중씨와 함께 인공지능 스타트업 '스타일캣'을 창업해 운영해왔다.

두 사람은 당시 함께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성과는 부진했다. 결국 사업을 접으려던 찰나, 권도형의 권유로 2018년말 회사를 매각, 테라에 합류한다. 김현중씨는 테라의 기술파트 부사장을, 김한주씨는 기술총괄을 맡는다. 이들은 이후 개발된 미러프로토콜과 앵커프로토콜 개발의 주축이 된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