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 금지로 중국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더라도 한국 기업이 그 공백을 메우지 말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백악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이 같은 요청을 했다고 양국 정상회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 조 바이든 페이스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 조 바이든 페이스북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3강이다.

미국의 이 같은 요청은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4월 안보 심사에 들어간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마이크론에 대한 심사를 통상적 감독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자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에 대한 맞대응 행보로 보고 있다.

미 정부는 중국이 안보 심사의 결과로 마이크론의 판매를 금지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반도체 판매를 확대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마이크론을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지렛대로 쓸 수 없도록 한다는 동기에서 미 정부의 이번 요청이 비롯됐다고 FT는 전했다. 하지만 주미 한국 대사관과 삼성전자는 이번 요청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SK하이닉스도 한국 정부에서 요청받은 게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번 요청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행정부가 첨단기술 보호 노력을 포함한 국가·경제 안보에 대한 협력을 심화하는 데 ‘역사적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여기에는 반도체 부문 투자 조성, 핵심기술 보호, 경제적 강압 해소 등 노력도 포함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다가오는 미국 방문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협력이 더 강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FT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공조해왔으나, 동맹국에 그 나라 기업이 이같은 역할을 하라고 동참을 요구한 것은 처음 알려진 사례라고 보도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