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당정이 의료계와 간호단체를 만나 중재를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당한 사회적 파장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측이 한치의 양보를 보이고 있지 않는데다, 간호법 내 ‘지역사회’ 문구에 대한 삭제 여부를 두고 치열한 갈등 논쟁이 오가고 있어 다가올 본회의 때까지 중재안 합의가 성사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간호법 찬성 천막과 반대 천막이 국회앞에 나란히 설치돼 있다. / 김동명 기자
간호법 찬성 천막과 반대 천막이 국회앞에 나란히 설치돼 있다. / 김동명 기자
범의료계에 따르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과 중범죄를 저지른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표결에 들어간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기존 법안대로 강행하겠다고 맞서는 한편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가 간호법이 상정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부터 5박 7일간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일정 수행단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간호법 본회의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해외 일정을 취소한 조 장관은 27일 본회의 전까지 각 직역 단체 및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등을 이어가며 막판 중재에 나설 전망이다.

앞서 조 장관은 17일 대한간호협회, 19일 병원간호사 회장단, 20일 이대목동병원 현장 간호사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펼쳤고, 21일에는 역대 복지부 장관 최초로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방문했다.

이 자리를 통해 정부 측은 당정이 제시한 간호법 중재안인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을 수용하고 일부 논쟁 사항을 하나씩 고쳐나가자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간호협회는 중재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일각에서는 지난주 펼친 복지부의 행보에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부가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는 법안을 따로 만들겠다고 간호단체에게 제안한 상태다"라며 "다만 간호계는 간호법 통과 이외에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중재 논의가 고착된 상태다"라고 평가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오후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현석경 간호부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오후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현석경 간호부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뉴스1
현재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으로, 간호사 및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의 책무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당정은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으로 바꾸는 중재안을 제시한 상태다. 특히 해당 법안에서 발생한 갈등의 맹점은 ‘지역사회’라는 문구다.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에는 기존 법안의 1조 목적에 있는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간호법 원안에는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이 명시돼 있는데, 이 지점이 그간 의료계에서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 개원할 여지가 있다며 강력히 반대한 부분이다.

또한 간호법 내에서 간호조무사들이 반대해온 학력 요건을 중재안에서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 이상’으로 변경했고, 교육 전담 간호사와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는 기존 의료법에 규정하는 내용으로 한다는 점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지역사회 문구가 삭제된 중재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간호단체의 완강한 거부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측이 중재안을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야당의 일방적 제안"이라며 원안 강행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22∼23일 양일간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제75차 정기대의원총회를 개최해 간호법 및 의료인 면허 취소법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의협은 해당 총회에서 간호법 관련 투쟁 및 파업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박명하 비대위원장은 "27일 본회의 목표는 표결을 막아내는 것이 아닌 잘 통과되도록 하자는데 있다"며 "이후 5월 9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여부를 결정해 국회 재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본회의 전날인 26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간호법 반대 집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간호조무사협회는 25일에 1000여명이 개인 연가를 활용해 참여하는 ‘경고성 파업’을 실시, 간호법 통과 시 단독으로라도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겠고 주장한 상태다.

이에 맞서 간호협회는 연일 국회 앞에서 하는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이번 주말에는 쉬고 23일부터 다시 이어가기로 했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2021년 3월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 원안은 공청회, 상임위 법안소위를 거쳐 여야와 정부가 이미 합의한 법안이다"며 "이제 와서 중재안을 대안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법안을 뒤집어 엎을려는 시도로,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막판 중재안 합의를 위해 간호협회를 최대한 설득하는 동시에 의협과 간무협을 만나 파업 자제를 요청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할 방침이다.

더불어 복지부는 간호사 인력 부족과 업무 부담 등 처우 개선 방안을 예상보다 일찍 공개할 계획이다. 이는 올해 1월 간호협회 등과 구성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수립 협의체’를 통해 논의된 근무 환경 개선 방안이다.

당초 해당 발표는 5월 12일 간호사의 날에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사태가 위급하다고 판단해 예정보다 일찍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대한 양측의 주장을 듣고 27일 본회의 결과 이후 발생 가능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어떤 결정이 내려져도 복지부는 양측의 불만 사항을 수집 및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