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법이 허용한 가상자산 결제 사업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날이 내놓았던 페이코인(PCI)도 결국 금융당국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 국내 서비스를 접었다.

일각에선 테라폼랩스가 2019년 공개한 블록체인 기반 ‘차이(CHAI)’가 최초의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라 주장한다. 그런데 ‘테라X’로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왜 갑자기 ‘차이’로 이름이 바뀌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블록체인 결제 기반의 서비스가 맞는걸까.

테라폼랩스는 2018년부터 1년간 블록체인 결제 플랫폼 ‘테라X’ 출시에 승부수를 걸었다. 테라X는 테라 생태계에서 처음으로 사용 가치를 만들고 루나의 가치 상승을 이끌 핵심이었다. 하지만 1년 뒤 나온 것은 가상자산 결제도 아니고 이름도 전혀 새로운 간편결제 서비스, 바로 차이(CHAI)였다.

차이가 만들어진 이유

차이 개발사인 차이코퍼레이션의 전신은 2018년 9월 설립된 ‘지구전자결제’다. 테라(땅)와 연관되는 단어 ‘지구’가 이름에 들어가 있는 부분에서 연상되듯, 처음부터 테라의 결제 사업을 총괄하고 결제 플랫폼인 ‘테라X’을 만들기 위한 기지로 세워졌다.

지구전자결제의 설립자는 한창준씨다. 한씨 역시 다른 테라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학연으로 연결된 초기 멤버다. 펜실베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래에셋 글로벌 채권운용본부에 재직하던 중, 펜실베니아대 한인 총동문회 임원이던 최준용 가즈아랩스 대표와의 인연으로 2018년 테라폼랩스 CFO(최고재무책임자)로 합류했다.

가즈아랩스와 지구전자결제, 플렉시코퍼레이션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목적을 가진 회사인 만큼 한 공간에 모여있었다. 세 회사가 설립된 201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한화생명 서초사옥에 위치한 드림플러스 1213호에는 가즈아랩스가, 1219호에는 지구전자결제가, 1202호에는 플렉시코퍼레이션이 나란히 위치했다.

학연으로 뭉친 테라팀은 개발사, 운영사, 투자사로 역할을 분담하고 도약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당초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다. 가상자산과 관련된 제도는 여전히 미비했고 시장 분위기 또한 뒤숭숭했다. 2018년 중순 금융당국에 결제 도입 가능여부에 대한 질의를 넣기도 했으나, 가상자산 결제 자체가 새로웠던 시점에서 당국 역시 마뜩잖은 반응을 보였다.

설상가상 테라X라는 이름을 획득하는데도 실패한다. 지구전자결제는 설립 직후인 2018년 10월 ‘전자화폐환전업’, ‘가상화폐환전업’등을 분류로 한 ‘테라엑스’ 상표권을 출원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전자화폐나 가상화폐는 투자 대상이 아니므로 존재하지 않는 업종이며 금융업자 서비스로 오해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거절한다.

규제 리스크 탓? 블록체인과 거리 둔 '차이'

이들이 택한 해결책은 전자금융업 등록이었다. 테라로 직접 가상자산이 결제되는 구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선불전자지급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면허를 보유한 별도의 회사를 둬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지구전자결제, 지금의 차이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지구전자결제는 2019년 4월 금융위원회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한다. 테라는 두 달 뒤 차이코퍼레이션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발표를 내보낸다. 지구전자결제는 2019년 6월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를 시작하고 9월, 차이코퍼레이션으로 상호를 변경한다.

차이를 통한 결제 구조 자체는 기존 ‘테라X’에서 구상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라X’와 ‘차이' 모두 결제 파트너사의 앱에는 가상자산이 아닌 원화 포인트가 충전된다.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도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 결제가 된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가장 큰 차이는 ‘테라X’는 블록체인 위에 구현된 서비스인 디앱(DApp, Decentralized Application)이고, ‘차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디앱 ‘테라X’는 가상자산을 직접 보관하고 이동할 수 있는 ‘가상자산 지갑’이었다. 반면 ‘차이'는 일반적인 ‘OO페이’와 다를 바 없었다.

차이 앱을 통해 이뤄진 결제는 단순 장부거래였다. 차이를 이용한 결제가 이뤄지면 테라 블록체인은 그 거래 내역을 그대로 미러링(복사)해 기록하는 꼴이었다. 요컨대 차이와 테라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아예 다른 시스템이었다.

테라와 협업한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구조를 "차이에서 결제가 일어나면 돈이 테라 체인을 타고 바로 가맹점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결제가 이미 처리되고, 그 이후에 결제 트랜잭션을 테라에 반영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디앱이라는 특성을 버린 덕에 차이는 은행이 ‘테라X’에 내어주지 않았던 계좌를 획득해 냈고, 가맹점에 원화 정산을 해줄 수 있었다. 어찌됐건 차이에서 이뤄진 결제를 테라 블록체인이 똑같이 처리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이를 ‘블록체인 기반 결제’라 불렀다.

당시 재직한 테라폼랩스 직원은 "블록체인 결제 앱이라 하기 위해서는 차이 자체가 ‘가상자산 지갑’이었어야 했고, 사용자가 직접 트랜잭션을 만들어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권도형은 그래도 테라 블록체인이 차이를 보고 같이 움직이는건데, 어떻게 별개냐는 논리를 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티몬 포인트 아니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 지갑에 들어온 돈이 가상자산 ‘테라토큰’인지 원화인 ‘테라포인트’인지 구분할 이유도 없었다. 내부에서 어떤 시스템이 돌아가는지는 개발자의 말을 믿는 수 밖에.

그래도 차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결제 수수료율을 줄였다’고 홍보하며 소비자들에게 높은 할인을 제공했다. 선불결제 이용시 매일 최대 5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부스트’ 혜택은 소비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어냈다. 시장의 반응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가입자는 출시 열흘만에 10만명, 반년 후 100만명을 넘겼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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