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국내 반도체 업계가 다양한 방식의 비용 절감을 시도한다. 올해 1분기 수조원대 적자를 냈지만, 차입금 이자 비용 등 당장 나가야할 비용은 오히려 늘었다. 지갑 사정이 빠듯하다. 업계는 임직원에 장기휴가를 권장하고, 거점 오피스 확대를 보류하거나 경비를 50% 감축하는 등 비용 효율화에 나선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과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 각 사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과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 각 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한파가 길어지며 올해 1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8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손실 4조 5800억원을 냈고, SK하이닉스는 3조 4023억원의 적자를 냈다.

두 회사는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2분기 연속 조 단위 적자를 내며 비용 절감 강도를 더욱 높이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사내 연차 사용과 장기 휴가를 활성화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일명 ‘휴가 사용 리워드 프로그램’은 보유 연차의 80% 이상을 사용한 임직원에 복지 포인트를 포함한 혜택을 준다. 연차 소진을 독려하고, 휴일 근무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다. 회사는 특히 2주 이상의 장기 휴가를 권장하기 위해 임원과 팀장부터 솔선수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거점 오피스 확대나 춘·추계 행사도 당분간 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분기 적자 폭이 심화된만큼 비용이 들어가는 활동은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말에도 비용 효율화를 위해 임원 및 팀장급 활동비와 복리후생비, 업무추진비 등을 각각 50%, 30% 축소한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강도 높은 비용 절감에 나선 데는 업황이 침체된 영향도 있지만, 현금 흐름이 악화한 것도 있다. 실적난으로 차입금 규모가 더욱 늘었기 때문이다. 1분기 말 기준 회사의 차입금 규모는 28조 7580억원으로, 전년 동기(18조 1140억원) 대비 10조원 넘게 증가하며 현금 흐름이 나빠졌다.

SK하이닉스 측에 따르면 신규 차입을 고려했을 때 올해 이자비용은 작년 대비 2배 증가한 1조원 정도다. 또 향후 3년간 연평균 만기도래 규모는 4~5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다가올 업턴에서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투자와 비용의 효율적 관리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차입금 규모를 줄여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메모리 업계 맏형인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외 법인에서 100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해 상대적으로 재무 부담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미래 투자는 지속한다고 밝힌만큼 긴축 경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월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린 것 역시 반도체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전 사업부에 경비를 최대 50% 감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등 강도 높은 경영 효율화에 돌입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하반기 업황 반등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는 선제적으로 투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비용 효율화를 통해 재무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