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가 이례적으로 올해 1분기부터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했다. 사전 대응의 성격이라는 설명이지만, 자산건전성 우려가 높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 코로나19 지원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부실 가능성 등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는 올 1분기에만 2조264억원에 달하는 충당금을 적립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7933억원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충당금 적립 기준은 각 사 별로 상이. KB금융지주(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 신한금융그룹(대손충당금), 하나금융지주(대손충당금 등 전입액), 우리금융지주(대손 비용), NH농협금융지주(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 / 각 사
충당금 적립 기준은 각 사 별로 상이. KB금융지주(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 신한금융그룹(대손충당금), 하나금융지주(대손충당금 등 전입액), 우리금융지주(대손 비용), NH농협금융지주(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 / 각 사
KB금융지주가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으로 6682억원을 적립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458억원 대비 4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대손충당금이 6439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고정이하여신(NPL) 대비 충당금을 얼마나 쌓았는지를 나타내는 대손충당금전입비율(대손비용률·CCR)은 전년도 0.43%에서 올해 1분기 0.63%가 됐다. 특히 은행 CCR이 0.13%에서 0.4%로 껑충 뛰었다.

KB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설명이다. 서용호 KB금융 재무총괄(CFO)은 실적발표 당시 컨퍼런스콜을 통해, "3200억원은 코로나 종식을 대비한 충당금이고, 나머지는 고정이하여신에 따라 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철수 KB금융 리스크관리총괄(CRO) 부사장도 "부동산 PF가 악화되면 추가 충당금 적립을 고려하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급작스레 늘어난 KB금융의 충당금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증가폭도 증가폭이지만, 다른 금융사와 비교해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경영진은 선제적 성격으로 충당금을 적립했다고 했으나 이를 감안해도 대손비용률이 크게 상승한 점은 사실"이라며 "당국의 선제 충당금 적립 요구도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 이익 추정치를 하향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신한금융그룹은 461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이는 전년 동기 2434억원 대비 89.4%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신한은행이 1785억원을 적립했다. KB보다 증가폭은 적으나 분기 기준으로는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신한금융은 "연체율 상승 등 건전성 악화로 경상 충당금이 증가했고, 불확실한 경기대응을 위한 추가 충당금 1850억원 적립했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대손충당금 등 전입액은 3430억원으로 전년 동기 1650억원 대비 107.9% 증가했다. 이 중 하나은행은 올해 122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하나금융의 CCR 역시 크게 올랐다. 지난해 1분기 0.19%에서 올해 0.36%가 됐다.

하나금융은 "이번 분기 포함 최근 3년간 선제적 손실흡수능력 보강 감안, 향후 대손비용률이 안정화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하나금융은 향후 대손비용률을 0.3% 이하로 관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우리금융지주는 2610억원의 대손 비용을 적립했다. 이는 대손충당금, 미사용한도충당금, 지급보증충당금 전입액을 합친 금액이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660억원에서 57.4% 증가했다. 대손비용률은 지난해 1분기 0.2%에서 올해 0.31%가 됐다. 우리금융은 "연체율 상승 등에 따라 전년 동기 대비 약 953억 증가했으나, 이는 그룹 재무계획 범위 내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NH농협금융지주의 그룹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은 2932억원, 이중 은행은 2423억원을 기록했다. 그룹 충당금은 전년 731억원 대비 3배 넘게 증가했다. 농협금융은 "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적정수준을 유지했다"며 "건전성 중심의 자산성장 전략과 선제적 충당금 관리를 통해 미래 손실흡수능력을 지속 확대하겠다"고 했다.

NH농협의 증가율은 KB 다음인 만큼, 이 역시 요주의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여신 비중이 높은 만큼, 부실 우려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진단한다.

곽수연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농협은행의 자산건전성 지표 개선에도 점증하는 가계대출 리스크와 높은 고위험업종 기업여신비중으로 부실확대 우려가 상존한다"며 "코로나19 장기화 및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과 잠재부실 가능성을 고려할 때, 충당금 적립률 유지를 통해 실질적인 위험완충력 개선이 이뤄질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관건은 연체율이 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업계 공통된 견해다. 연체율 상승이 계속될 경우, 충당금 적립 부담은 올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은행 연체율과 NPL 비율이 이전과는 달리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등 건전성 악화 추세가 본격화 되고 있다"며 "향후에는 대손비용의 절대 레벨이 예년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