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는 고성장 산업이다. 고성장 이면에는 제대로 쉬지 못하는 작가의 애환이 녹아 있다. 웹툰·웹소설 작가는 현재 산업구조가 기형적이라고 지적한다. 작가의 창작물로 유지되는 산업이지만 정작 작가의 창작활동이 보호받지 못해서다. IT조선은 웹툰·웹소설 업계 구조와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 픽사베이
/ 픽사베이
압정 형태 산업구조, 창작자는 힘들다

웹툰·웹소설 업계에는 위기가 이미 찾아왔다는 말이 나온다. 산업이 압정 구조로 형성돼서다. 소수의 인기 작가는 작품 하나로 수억원이 넘는 수익을 낸다. 그러나 다수의 작가는 독자를 만나기도 힘들다. 산업구조가 기형적인 탓이다. 독자를 만나기 힘든 이들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를 얻기 위해 제작사(CP)와 플랫폼에 머리를 숙인다.

한 웹툰 작가는 "불공정한 일이 있어도 혹시나 플랫폼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또는 플랫폼에서 작품을 연재하려면 필요한 CP 눈 밖에 날까봐 목소리를 내지 못 한다"며 "겨우 용기를 내어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면 ‘계약서에 서명한 네 잘못 아니냐’는 비난만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은 더 치열하기만 하다.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같은 플랫폼사는 작가에게 더 많은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카오엔터는 심지어 계약서 개정안에 ‘작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과도한 연재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최소 컷수도 60컷에서 50컷으로 낮췄다. 하지만 시장의 수요는 더 많은 컷수다.

독자가 더 많은 분량을 원하기 때문이다. 웹툰 분량을 늘리고 보다 높은 질의 작화를 원한다. 웹소설의 경우는 한편이라도 더 올려주길 바란다. 재미있으니 더 보고 싶다는 팬의 애정 표현이 모여 시장의 요구가 됐다.

웹소설은 한 화에 5000자쯤을 써야 한다. 연재는 보통 주 5회다. 이렇게 웹소설 분량이 정해져 있으니 편수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다. 팬들이 ‘연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역시 시장의 수요가 되면서 웹소설은 연재 초기 한 번에 수십화를 공개하는 일이 잦아졌다. 웹소설 작가들은 유료연재라면 다 그렇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웹소설 작가는 "네이버는 90화쯤을 쌓아야 출시 일정을 잡아주고 카카오는 출시일에 120화쯤을 한 번에 푼다"며 "그래서 작가가 미리 초기 분량(90~120화)에 더해 비축분을 25화쯤 추가로 만들어 둔다"고 설명했다. 다른 웹소설 작가는 "일반연재, 자유연재, 무료연재라면 원고를 차근히 하나씩 비축해가면서 연재를 해왔지만 요즘은 경쟁이 심해져 유료연재처럼 비축분을 미리 준비해 한번에 공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시장의 요구를 이렇게 홀로 감당하면서 점점 괴로움을 호소한다. 반면 플랫폼과 CP는 작가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지 않고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문제 해결은 ‘표준계약서’부터 시작

웹툰·웹소설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만큼 제도를 정비할 시간이 모자랐다. 특히 표준계약서가 문제다. 현행 표준계약서는 업계 현실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표준계약서의 역할은 공정한 계약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웹툰·웹소설 표준계약서는 미비한 상태다. 웹툰은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웹소설은 표준계약서가 없다. 지금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이용하고 있다. 웹소설 표준계약서는 올해 제정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아무도 일을 더 시키지 않았는데 웹툰 작가들의 건강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생긴다. 웹툰 업계에서 꾸준히 설전이 오가는 분야다. 웹소설은 제도를 이제 정비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은 그동안 출판업계의 한 갈래인 ‘전자출판’으로만 여겨졌다. 웹소설 관련 실태조사는 지난해 말 시작했고, 웹소설 표준계약서는 이제 만들어진다.

한 웹소설 작가는 "작가는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지 법률 전문가가 아닌데 법률 용어로 가득한 계약서를 보고 불공정함을 알아채기 힘들다"며 "지금 불합리한 일을 겪는 이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가 더는 없도록 표준계약서에 독소조항을 원천 차단할 여러 방안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집단 창작 유행에 양극화되는 웹툰 업계

웹툰·웹소설 업계 문제를 한 번에 같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웹툰과 웹소설이 여러 부분에서 비슷하지만 업계별 상황이 달라서다. 공통점은 플랫폼이 소수의 CP를 통해 다수의 작가와 계약하는 구조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웹툰은 CP를 통한 집단 창작이 늘었다. 시장 수요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점은 집단 창작으로 CP가 가져가는 수익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플랫폼이 가져가는 비중은 고정돼 있다. 창작자 몫을 작가와 CP가 나눈다. CP를 통해 집단 창작을 하면 앱 마켓, 플랫폼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에서 작가의 수익을 선화, 채색 등 제작 공정에 참여한 이에게도 나눠야 한다. 작가가 플랫폼 직계약을 선호하는 이유다.

집단 창작 방식의 확대는 CP와 플랫폼에게도 작품 하나하나를 고위험 고수익으로 보게 만든다. 작품 하나 만들 때 투입되는 인력이 많아진 만큼 투자비용이 증가한다. 그렇게 투자한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손실도 커지는 셈이다. 이런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몸집이 큰 기업만 살아남고 중소규모 CP와 플랫폼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창완 세종대학교 교수는 "작가는 창작물로 번 수익을 작업실 임대료, 보조작가(어시) 인건비 등 여러 비용을 제하고 나면 월수익이 1000만원 이어도 실제로는 100만원 이하를 받기도 한다"며 "플랫폼과 CP도 작가가 작품을 준비할 때 플랫폼과 CP가 선인세를 주며 투자하는데 작품 성적이 부진하면 그대로 손실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실을 줄이려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반응이 좋은 집단 창작이 늘어나고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투자가 몰리게 된다"며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기존 대형 플랫폼은 대형 CP 중심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이 되고 인스타툰 같은 SNS 기반 웹툰이 초기 네이버나 카카오 플랫폼처럼 팬덤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웹소설, CP 역할 명확하게 규정해야

웹툰 업계의 문제가 양극화라면 웹소설 업계의 문제는 CP의 정체성이다. 웹소설 업계가 웹툰과 비슷하면서 다른 이유는 웹소설 업계가 출판업계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출판업계는 작가가 집필을 마친 원고를 모아 출판사가 종이책을 인쇄하거나 전자책(e북)으로 단행본을 서점에 유통한다.

반면 웹소설은 주 5회쯤을 연재한다. 일일 연재라는 점이 기존 단행본 중심 출판업계와 명백히 다른 지점이다. 종이책을 인쇄하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플랫폼에 올릴 원고를 만드는 것도 작가 스스로도 금방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출판사 역할을 하는 웹소설 CP가 딱히 하는 일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들은 웹소설 CP를 ‘매니지먼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CP 소속 편집자(PD)가 원고를 먼저 읽으며 설정에 이상은 없는지, 전개는 자연스러운지 등을 검토해주거나 플랫폼 프로모션을 위해 영업을 하는 등 작가를 위한 매니지먼트 활동을 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여러 작가가 PD를 보고 CP를 선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잦은 PD 교체가 창작을 매우 방해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웹소설 업계에서 주로 참고하는 출판 분야 계약서는 작품을 어떻게 출판할지에 관한 내용이 규정된다. 작가를 위해 플랫폼 프로모션을 하는 것 등은 계약서에 기재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CP의 플랫폼 프로모션 영업을 매니지먼트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CP가 플랫폼 외부 프로모션을 하지 않아서다. CP의 외부 프로모션은 기껏해야 회사 블로그나 SNS에 홍보용 글을 쓰는 정도라는 말이다.

김선민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는 "현재 웹소설 업계는 CP의 업무나 직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뛰어난 CP도 그 역량을 드러내기 어렵다"며 "우선 작가와 CP가 어떤 업무나 직무를 수행할지 서로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하면 작가, CP, 플랫폼 3자간 계약 관계가 생기는데 CP와 플랫폼 계약은 작가가 확인할 수 없다"며 "3자간 계약 관계도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