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최근 독과점 남용 행위를 이유로 구글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제재에 순응하고 과징금을 내면 불공정행위를 인정하는 선례로 남게 된다. 구글이 불공정 행위를 부인하며 유감을 표명한 배경이자 전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업계는 구글이 과징금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는 의미만 남겼을 뿐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실제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선 한국 홀로 규제를 하기보다 국제적 논의를 토대로 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뉴스1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뉴스1
정부의 과징금 부과, 과연 효과 있을까

1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4월 11일 구글에 과징금 부과 조치를 발표한 후 공식 처분을 위한 의결서를 정리하고 있다. 당시 공정위는 구글이 경쟁 앱마켓인 ‘원스토어’에 게임 출시를 막아 앱마켓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해 의결서 송달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의결서를 받아야 구글에 정식으로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는데 조속한 처리가 불가한 셈이다.

김영식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한국은 ~하면 안된다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 하나의 법으로 구글의 불공정 행위 문제를 규제하기 어렵다"면서 "그렇다고 미리 일어날 불공정 문제를 대비해 규제 법안을 만들면 신산업 성장을 차단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빠르게 변화하는 IT환경에 맞추려고 하면 국내 법제도가 못 따라간다"면서 "정부 부처간 이견도 있고, 세계 각국의 입장이 달라 글로벌 합의 과정을 봐가며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국내와 해외간 다른 기준으로 규제를 하다보니 산업 진흥의 속도를 맞추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국내와 해외간 일관성있는 제재 적용이 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정세가 살벌하다보니 구글의 독점행위를 문제라고 보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구글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 올해 달라진 변화같다"면서 "국내에선 규제의 원칙 없이 어떨땐 진흥해야한다 놓고 지금은 또 문제 많다고 규제 얘길 하고 있다. 플랫폼 독점이 심해서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면 그 부분만 규제해야지 전체가 문제있다고 호통부터 치면 엉뚱한 규제만 늘어나게 된다"고 꼬집었다.

서울 강남구 소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 뉴스1
서울 강남구 소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 뉴스1
구글 독점 규제 유럽서 논의 활발…미국, 반독점법 추진 제동

구글의 독점 우려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논쟁거리다. 한국은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를 막고자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2021년 9월 세계 최초로 처리했다. 보다 강력한 규제 신호탄을 쏜 것이다.

당시엔 미국과 유럽 등에서 빅테크의 반독점 규제 움직임이 일면서 구글의 독주를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구글은 법을 우회하는 꼼수를 쓰며 서비스 이용자를 압박하고 있다.

구글 제재는 큰 틀에선 이른바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세' 부과 등을 통해 합의된 상태다. 2024년부터 시행되는 디지털세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국적과 관계없이 매출을 올리는 국가에서 직접 세금을 내도록 하는 제도다.

일정 금액 이상의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권한을 매출이 발생하는 나라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국세청도 디지털세 도입을 위해 관련 전산시스템 구축에 착수한 상태다.

나라 마다 제재 방식 달라…강력한 유럽 방식 따라야

다만 세부적인 룰은 세계 각국마다 제재 방식이 다르다. 유럽연합(EU)은 8월부터 구글과 트위터 등에 강력한 규제를 펼칠 예정이다. 4월 25일(현지시각) EU집행위원회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의 강화된 규제가 적용될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 및 검색엔진' 19개를 지정했다.

DSA는 허위 정보 및 불법·유해 콘텐츠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법률로, 무분별한 콘텐츠 확산을 방관한다는 비판을 받는 대형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여기에 최근 각광받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AI) 기반 정보 유통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EU와 달리 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자국 기업인 구글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미국은 구글을 포함한 MS, 메타, 애플, 구글 등 5대 빅테크를 규제하는 반독점 법안들을 추진했지만 미국 상원 통과에 실패하면서 폐기됐다. 플랫폼 기업의 자사 우대 제한을 비롯해 자사앱 마켓만 이용하는 행위 금지 등을 담은 5개 법안이 모조리 무산되면서 동력을 잃어버린 모양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강한 규제 의지를 갖고 빅테크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EU와 같은 구글 제재를 진행하려는 국가와 공조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국내 플랫폼 기업을 향한 과한 제재를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간 규제 집행과 수위는 통일해서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은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자국 법원으로부터 기업 분할 명령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빅테크 독과점 제재가 주목받았는데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구글까지 이어졌다"며 "미국은 자국 내에선 구글 등 빅테크를 제재하지만 외부적으론 구글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며 국익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는 "400억원 규모의 공정위 제재는 약한 수위로, 한국 정부는 더 강력하게 의지를 가지고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고려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회적인 방법으로 또 제재를 피하고 문제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