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료계를 혼란에 빠트린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결정에 따라 의료계와 간호계의 대규모 준법투쟁을 펼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합법적인 단체행동을 나쁘게 볼 수 없지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각 직역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간호협회 임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 뉴스1
간호협회 임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 뉴스1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주말 대통령실, 정부, 국민의힘으로 구성된 고위당정협의회(고위당정)가 개최, 이 자리에서 여당과 정부는 간호법에 대한 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합의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며 "법안이 이해관계자 입장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고 보며,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해하는 반향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당초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야 물밑협상을 통해 중재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전망이였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도 15일 조규홍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이 보건의료 직역 갈등과 의료현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앞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협과 간호협회를 오가며 의견 조율에 나섰으나 서로 대치만 할뿐 타협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에 현행 간호법에서 ▲간호사법 명칭 변경 ▲지역사회·의료기관 문구 삭제 ▲간호조무사 고졸학력 제한 폐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내용 의료법에 존치 등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조 장관은 15일 브리핑에서 "당과 정부가 간호법에 대해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께 내일 국무회의에서 건의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호법안을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의료에서 간호만을 분리해 의료기관 외에 간호업무가 확대되면 국민들이 의료기관에서 간호 서비스를 충분히 받기 어렵게 되고, 의료기관 외에서의 사고에 대해서는 보상 청구와 책임 규명이 어려울 것이다"고 덧붙였다.

만약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올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은 두 번째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된다. 간호법 제정안은 16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으로,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19일까지 행사할 수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간호법안 관련 대통령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결정했음을 밝혔다. /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간호법안 관련 대통령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결정했음을 밝혔다. / 뉴스1
범의료계는 대통령 결정에 따라 대규모 준법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우선 보건복지의료연대(의료연대)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17일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의료연대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키고 무너져가는 의료를 지키기 위해 의료연대,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심점으로 마지막까지 힘을 합치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와 의료연대는 17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결단했다"고 알렸다.

이번 의료연대 총파업에 전공의들의 참여 여부도 관심사다. 2020년 의사정원 확대에 대해 의료계와 정부가 갈등을 빚을 당시 일반 개원의를 포함한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상당수 참여해 보건의료에 큰 차질이 생긴 바 있다. 응급환자 처치와 수술 등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전공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간호단체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전국 대형병원과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준법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이전까지 투쟁을 통해 단체행동을 진행했다면, 간호법 거부권 이후부터는 응급실 등 주요 필수의료 전반에서 활동 중인 PA(진료지원간호사)가 준법투쟁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간호단체는 전공의의 파급력만큼 PA간호사 영향력이 막대할 것이라 보고 있다. PA간호사의 경우 공식 직무는 아니지만 의사가 부족한 응급실 및 필수의료 현장에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는 존재다.

PA 업무가 모호해 정확한 추산은 불가능하지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전국 1만명 정도가 PA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대병원만 해도 전국 PA 인력이 2021년 기준 1091명에 달한다.

간호단체 관계자는 "단체행동 중간 조사 결과 회원 98.7%가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며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의사집단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강한 투쟁을 펼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민 생명을 담보로한 의료직역 간의 행동에 비판하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국민을 담보로 한 싸움이 정당하냐", "밥그릇 싸움에 국민을 끌어들이지 말라", "간호법이 어떻게 되든 국민들은 크게 관심 없다" 등 부정적인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단체와 마찬가지로 간호계도 의료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PA간호사에 대한 집단행동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안다"며 "전공의 참여에 대한 파급력도 상당해, 양측이 소위 ‘핵미사일’ 버튼을 만지작거리고는 있지만 실제 사용할 경우 대대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