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일이 200일이 지난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뉴삼성’이 구체화되고 있다. D램 중심에서 전장용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영토가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 회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 첨단 반도체 거점을 마련하고, AI 차량용 반도체 등 새로운 수요처 발굴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17일 충남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17일 충남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 삼성전자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일본 요코하마에 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개발 거점 건설을 추진한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첨단 반도체 시제품 라인을 구축하는데, 수백명 가량의 직원도 채용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에 지급할 보조금 규모는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 내 반도체 거점 신설 계획 관련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처로 일본을 낙점한 배경으로 일본이 가진 요소기술의 강점과 미중 갈등, 삼성그룹과 일본의 우호적 관계 등을 지목했다.

일본은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분야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패키징은 반도체 초미세공정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분야로, 삼성전자는 해당 공정을 고도화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하며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도 삼성의 일본 투자에 힘을 싣는다. 미국은 반도체법 등을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투자는 제한하고 있다. 또 인텔과 마이크론 등 경쟁사와 기술 협력도 요구하고 있다. 관련해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반도체 산업에서 일정한 입지와 높은 기술력을 갖춘 일본이 최적의 파트너인 셈이다.

삼성그룹이 이병철 창업회장 때부터 일본과 쌓아온 협력 관계도 조명됐다. 삼성그룹은 과거 일본의 도시바와 소니 등과 기술을 공동 개발한 사례가 있다. 또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 등은 3대에 걸쳐 일본에서 유학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일 삼성전자 북미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났다. 왼쪽부터 칸 부디라지(Karn Budhiraj) 테슬라 부사장, 앤드류 바글리노(Andrew Baglino) 테슬라 CT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한진만 삼성전자 DSA 부사장.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일 삼성전자 북미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났다. 왼쪽부터 칸 부디라지(Karn Budhiraj) 테슬라 부사장, 앤드류 바글리노(Andrew Baglino) 테슬라 CT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한진만 삼성전자 DSA 부사장. / 삼성전자
이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AI·차량용 반도체 등 생산 체제 다변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취임 후 첫 미국 출장에서 22일간 머무르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별도로 미팅을 갖고, 반도체 사업 구상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기업 모두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의 ‘큰 손’으로 이 회장의 이번 회동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영토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특히 머스크 CEO와 만남을 계기로 삼성전자의 전장용 시스템 반도체 사업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 반도체’ 공동 개발을 비롯해 차세대 IT 개발을 위한 교류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글로벌 ICT 시장 불황 속에서 미래 성장사업을 새 주력 먹거리로 길러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중대 기로에서 이 회장이 직접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신사업 전략을 모색하며 돌파구를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