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사기는 다르다. 나는 UST(테라 스테이블코인)의 회복 가능성과 그 가치를 믿었다."

‘테라·루나’ 사태가 한 달 정도 지났을 지난해 6월 무렵, 권도형(사진) 테라폼랩스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테라와 루나의 가치 하락은 단순히 사업적 실패일 뿐, 자신의 말과 배치되거나 거짓된 행동은 없었다"고 밝혔다.

2022년 5월 9일 발생한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와 달러화의 디페깅(가격비동조화) 이후 1주일간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약 450억달러(약 44조원)의 돈이 사라졌다. 권씨는 사태 발생 일주일 후인 5월 17일 테라 생태계 재생계획을 발표한다. 이미 회생 불가가 된 테라와 루나를 ‘루나 클래식’으로 발행, 새로운 루나를 발행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권씨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던 테라 커뮤니티와 토큰 투자자들은 65%라는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보이며 새로운 블록체인의 탄생을 지켜봤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은 신용이다. 이미 믿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금방 만들어진 프로토콜은 회복 불가였다. 20달러짜리 ‘신 루나’는 결국 반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4달러 밑으로, 한 달 후에는 1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전이되는 위험…’급한 불 끄자’ 각국 공조 속 수사 본격화

부작용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반년 후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붕괴로 정점을 찍었다. 테라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던 가상자산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캐피탈(3AC)을 비롯, 가상자산 기업들이 연이어 무너졌다. 3AC의 파산에 여러 업체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불건전한 자금 구조를 숨기던 FTX는 돌려막기식의 재무 구조가 들통나며 파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여러 가상자산이 몰락한 사례는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심각성이 달랐다. 각국 규제기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태 발생 하루 뒤인 5월 10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규제를 다루는 법안을 내놓겠다 선전포고했다.

한국 수사당국은 처음에는 루나 투자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고소 사건 처리에 집중했다. 국내 피해자 다수는 20~30대였고, 한탕의 꿈을 안고 뛰어든 새내기 직장인부터 주부들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개별 사건으로 수사하기에 여파는 잡을 수 없이 커졌다. ‘테라·루나’사태로 인한 국내 피해자는 국내에서만 20만명이 발생했고, 반년새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4조원이 더 증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며 부활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지난해 7월, ‘테라·루나’사태를 1호 타겟으로 삼고 수사를 시작했다.

윤석열 새 정부도 바쁘게 움직였다. 당정은 사건이 터진 같은 달인 5월과 6월, 잠시 가동을 중지했던 ‘가상자산 TF 간담회’를 열고 STO(증권형토큰) 규제부터 시작해 기본법 준비를 서두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세계로 도주 권도형 결국 검거…제도화 언제쯤?

검찰은 7월 권씨에 대해 입국시 통보 조치를 내리고, 이후 9월 인터폴 수배를 요청했다. 반년간의 도주극의 시작이다. 권씨는 도주 중에도 "내가 어느 나라 어떤 도시에 있는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잡히지 않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조선DB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조선DB
여권이 무효화된 11월까지 권씨는 싱가포르에서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를 거쳐 유럽에 배편으로 밀입국해 세르비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를 거쳤다. 이후 지난해 12월, 국제 공조를 통해 권씨를 추적해온 수사당국은 몬테네그로에서 권씨를 체포했다.

권도형이 좀 더 빨리 체포됐다면 이번 사태가 좀 더 원만하게 해결됐을까? 현재까지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에는 테라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다루는 내용은 없다. 법인의 발행자격, 준비자산 운용 방법 내용 또한 국회에서 논의 단계조차 진척된 게 없다. 누군가 제2의 테라를 발행한다고 해도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테라 루나’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권 대표의 주장처럼 사태 테라 프로젝트’의 몰락이 실패였는지, 혹은 사기였는지 여부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질 예정이다. 큰 대가를 치룬 시장이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번 사건을 모사해 새로운 사기극을 펼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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