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월 1일부터 시행되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방향을 공개한 가운데, 업계와 의료계가 각각의 이유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업계는 초진진료 불허로 사용자 편의성이 감소하고 대부분의 환자가 플랫폼을 사용 못하게 될 것이라며 비판한 반면, 의료계는 예외 조항을 통해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비대면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 시범사업 최종안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집중된다.

오전 서울 용산구 최내과의원에서 의사가 코로나 확진자를 대상으로 비대면진료를 보고 있다. / 뉴스1
오전 서울 용산구 최내과의원에서 의사가 코로나 확진자를 대상으로 비대면진료를 보고 있다. / 뉴스1
팬데믹 시범사업과 유사…의원급·재진·대면 약 전달 등 주요 골자

관련 당국에 따르면 최근 당정은 의료법 개정을 통한 제도화 전까지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한 시범사업을 1일에 맞춰 시행해 제도 공백을 최소화하되, 제한적 범위에서 추진한다는 내용의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심의·발표했다.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제한적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은 의료법 개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시행된다. 계도기간은 8월말까지로 3개월 가량 진행될 예정이다.

복지부가 공개한 비대면진료 원칙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재진 중심으로 하되, 초진 범위 확대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 ▲의료기관 선택, 약국 지정 등 서비스 전반을 환자가 선택 등이다.

대상 환자로는 ▲대면진료 경험자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 ▲18세 미만 소아 환자 등이다. 단 감염병 확진 환자는 감염병예방법 상 해당 환자가 치료기간 중 타 의료기관 진료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초진이 허용된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해 진료한 희귀 질환자, 수술·치료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는 환자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진료방식은 화상통신이 원칙이며, 예외적으로 음성전화가 가능하다. 다만 노인이나 스마트폰이 없는 경우에는 음성전화로도 가능하다. 문자메시지, 메신저만으로는 비대면진료가 불가하다.

처방전은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팩스나 이메일 등을 송부하는 방식으로 전달돼야 한다. 플랫폼 앱을 통한 약국 자동배정은 금지된다. 환자 위치에 기반해 모든 약국이 표출되도록 해 환자 약국 선택권을 보장한 방식이다.

의약품 수령은 본인 수령, 대리 수령, 재택 수령 등 환자와 약사 간에 협의된 방법으로 가능하다. 단 재택 수령은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휴일·야간 소아 환자,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 등에 한정된다. 향후 정부는 시범사업 평가 및 결과분석을 통해 대상환자 범위를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사실상 환자 사용하지 말라는 것…산업계, 환자 편의성 감소 우려

이번 추진방안을 두고 산업계가 먼저 강한 반발에 나섰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회(원산협)은 "매우 현실성이 떨어지는 시범사업안이다"며 "정부가 환자 스스로 재진을 증명해 비대면 진료를 사용하라는 것인데, 언제 이용할지 모를 재진에 대비해 초진 영수증을 계속 보유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약 배송 서비스. / 아이클릭아트
약 배송 서비스. / 아이클릭아트
이는 비대면진료 플랫폼 자체에서 환자 초진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으로, 실제 환자의 초진 정보를 업계에서 재진 이용 시 활용하려고 해도 관련 내용은 개인정보이기에 사업자가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초진을 받은 의료기관이 비대면진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원산협 관계자는 "환자가 초진을 받은 의료기관이 비대면 진료를 하지 않는다면 정작 환자는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시급한 상황에서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비대면 진료 이용 이유가 심야 시간대,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환경 등임을 고려할 때 장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칙 설정이다"고 토로했다.

약 배송 문제에 대한 불만도 크다. 원산협은 "약 배송의 경우에도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고 약은 대면으로 수령하라는 시범사업이 과연 진정한 비대면진료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답했다.

더불어 원산협은 처방약 배송에 참여하는 약사들의 탄원서를 공개하며, 국회에 약사 모두가 약 배송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탄원서에 따르면 언론과 정치권이 약사가 비대면진료를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대형약국이 약사 모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탄원서는 약사들에게 비대면진료 서비스가 더 많은 환자에게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의 발판이며, 동네 골목 상권에서 약국이 문을 닫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버팀목이이라고 선언했다.

예외조항으로 초진 허용 가능…의료계, 비대면진료 위험성 아직 남아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은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에 반대하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이번 시범사업 추진방안에 오류가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되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등 일부 대상자는 초진을 허용한다는 점을 들며, 이와 같은 예외 조항을 통해 환자가 잘못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내과의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내놓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은 각종 예외 조항을 둬 비대면 진료를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했다"며 "이런 내용이 담긴 시범사업 추진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심장질환, 만성신부전증 등 병세가 급격히 변하고 대면 진료로도 정확한 평가가 힘들 수 있는 모든 만성질환을 대상 질환에 포함시켰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천만한 정책이다"고 꼬집었다.

소아청소년 비대면진료에 대한 불만도 존재했다.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한 사례가 많은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면 오진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소아가 복통과 구토 증상이 있다면 바이러스 장염, 급성 맹장염, 장 꼬임 등 다양한 병이 의심되는데 비대면진료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며 "잘못된 진단으로 처치가 지연되거나 올바른 처방이 내려지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는데 복지부가 일방적인 정책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러한 업계·의료계 반발에 복지부는 최근 공개된 사업방향은 최종안이 아니며 추후 확정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계획을 공개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미 당정이 합의한 시범사업안이 등장한 상태에서 최종안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수가 여부마저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 때와 같이 대면 진료의 130%가 유력하며, 약 배송에 대한 거동불편자 범위의 확장성 정도만 최종안을 통해 변화할 가능성이 일부 존재할 뿐이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당정협 발표 내용은 최종안이 아니며, 수가 등 최종 사항이 결정되면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시범사업 시행 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며 "시범사업 중에도 지속적 평가와 논의를 거쳐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