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간호단체가 준법투쟁에 돌입한 가운데 관례적으로 간호사 업무행위를 벗어난 의료 행위를 시행해오던 PA(진료 지원인력) 간호사에 대한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병원 내 부족한 의료 업무를 전담해오던 PA간호사들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만을 철저히 지키고 의사의 불법업무지시를 거부하겠다 선언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범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한간호협회(간협)가 회원간호사에게 간호 업무 외 불법지시를 거부하는 준법 투쟁의 일환으로 불법진료 신고를 독려하는 웹 포스터를 발송했다.

웹 포스터에는 의사의 불법업무 지시로 ▲검사(검체, 채취, 천자) ▲치료·처치 및 검사 ▲처방 및 기록 ▲수술 ▲약물관리 ▲튜브관리 등 6가지 항목이 기록돼 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불법진료 행위를 지시받은 적이 있거나, 목격할시 대한간호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안내문에 있는 QR코드를 이용해 신고할 수 있게 했다.

김영경 회장은 "의사의 불법 업무지시를 근절하고,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준법투쟁을 위해 불법업무 지시 사례를 신고 받고 있다"며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 업무지시에 대해 강력하게 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간협은 간호법 거부에 저항하며 불법진료신고센터를 설치해 위법을 저지른 병원과 의사를 고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의료공백을 채우던 PA간호사의 업무를 막아 병원 내 진료업무에 부담을 주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간협은 18일부터 신고센터를 운영한 이후 일간 조회수 8000건이 넘었다고 밝히며,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1주일 동안 1만5000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준법투쟁으로 그동안 정부가 묵인해온 PA간호사에 대한 업무 범위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PA간호사는 의사들이 근무를 서지 않는 시간에 채혈, 대리기록, 심전도 검사 등 간호사의 법적 업무 범위를 넘어선 진료행위를 대신 한다.

의료법상 PA간호사의 업무행위는 불법에 해당하지만 의사 인력 부족과 의료기관의 진료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공공연히 시행돼 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전국 PA간호사를 1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 당시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42개 병원에 대해 의료법 위반 실태를 조사한 결과, PA간호사는 29개 병원(69.04%)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간협이 공개한 대리 처방, 대리 수술, 대리 기록, 채혈, 초음파, 동맥혈 채취 등 의료업무 최전선에서 근무하던 PA간호사가 법적인 근거를 대며 의사 지시를 거부할 경우 환자 대응은 물론 수술실 의료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대한간호협회(간협)가 회원간호사에게 간호 업무 외 불법지시를 거부하는 준법 투쟁의 일환으로 불법진료 신고를 독려하는 웹 포스터를 발송했다. / 간협
대한간호협회(간협)가 회원간호사에게 간호 업무 외 불법지시를 거부하는 준법 투쟁의 일환으로 불법진료 신고를 독려하는 웹 포스터를 발송했다. / 간협
우선 간협은 다음 주 간호법 제정안 재표결이 이뤄질 때까지 PA간호사 지시 거부 준법투쟁을 이어갈 방침이다. 간호법 제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부결시키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만큼 가결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달래기에 나섰다. 복지부는 쟁점화된 PA간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월부터 협의체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간호사가 수행 가능한 업무의 범위는 개별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간호협회가가 배포한 ‘불법 업무 리스트’ 속 24개 행위의 경우 문구 그 자체만으로는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법 상 간호사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 하에 진료의 보조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간협이 주장한 불법지시행위를 불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복지부는 대법원 판례를 들며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진료 보조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개별·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며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상의 위험, 부작용 혹은 후유증, 당시 환자의 상태, 간호사의 자질과 숙련도 등을 참작해 개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통령이 재의요구한 간호법과 PA 문제는 무관하며, 간호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PA 불법업무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이 결정된 16일 고대안암병원을 찾아 PA간호사들의 고충을 청취한데 이어 22일 세종충남대병원을 찾아 현장 의료진을 격려하고 필수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고충과 의견을 듣기도 했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각에서는 PA간호사와 관련해 향후 미국처럼 새로운 면허법이 생기고 합법화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복지부는 PA간호사를 제도화하거나 면허 신설을 논의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숙련된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통해 환자 편의성이 상승된다면 현행 PA간호사 업무를 마냥 불법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며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은 이들 분야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