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거부와 관련한 간호사들의 준법투쟁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분담하는 소위 진료보조인력(PA)의 불법의료행위 거부 투쟁이 의대정원 확대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PA간호사 존재가 의사 수 부족으로 발생한 역할이라는 점을 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정부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정부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범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최소 351명에서 많게는 500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의사 인력 일부를 비수도권 병원이나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의대정원 최대 500명 확대 검토…문재인 정부 계획가 유사

최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제9차 의료현안 협의체’를 열고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시작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의협은 의약분업 이후 줄어든 351명에 대한 증원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 PA간호사 문제가 부각되면서 의대 증원 수가 대폭 확대된다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정부는 의대생 중 상당수를 비수도권 거점 대학 등에 배치하고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거나, 흉부외과 등 수술 의사 전문과목에 배치하는 지역의사제를 유력 검토 중이다.

전국 의대 신입생 정원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전국 간호대 신입생 정원이 2007년 1만1206명에서 올해 2만3183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7명의 56.8% 수준이다. 이에 따라 앞서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명분으로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계획에는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400명 늘리고, 이렇게 확대된 정원 3458명을 10년간 유지해 의사 4000명을 추가 양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공공의료 및 중증·필수의료 분야에 의무적으로 의사를 투입시키는 지역의사제 카드도 꺼내들었으나, 전공의 집단 휴진과 의대생 국가고시 거부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코로나19가 안정화된 이후 재논의하는 방향으로 한 발 물러섰다.

이후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을 시작으로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가 다시 재점화됐고, 보건복지부 역시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의대정원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하며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PA 불법의료 문제는 의사 수 부족 때문"…기피과 불법진료 많아

이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발동시키면서 PA간호사들이 불법 의료행위 거부 투쟁을 시작, 의사 수 부족으로 생겨난 PA문제가 자연스럽게 의대정원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됐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과 가면을 쓴 의료기관 소속 PA 간호사 및 방사선사들이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보건의료 근본 과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종 업무 범위 명확화, 무면허 불법 의료 근절,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과 가면을 쓴 의료기관 소속 PA 간호사 및 방사선사들이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보건의료 근본 과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종 업무 범위 명확화, 무면허 불법 의료 근절,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최훈화 대한간호협회(간협) 정책전문위원은 "정부가 PA와 관련해 협의체를 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면서 "PA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려면 의사가 많이 공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9년 의정협의체를 꾸렸고, 2021년에는 병협, 의협, 간협 등을 모아 논의해 연구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PA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려면 의사부터 먼저 공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PA 인력의 불법진료들이 의사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달 18일부터 온라인 불법진료신고센터를 운영 중인 간협은 23일까지 만2189건의 불법 의료행위 신고가 익명으로 접수됐다고 공개됐다.

신고대상 병원 유형은 종합병원이 41.4%(5046건)로 가장 많았고, 상급종합병원 35.7%(4352건), 병원(전문병원 포함) 19%(2316건), 의원·보건소 등 기타 3.9%(475건) 순이었다.

간협은 종합병원에서 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왔다는 점을 들며, PA가 전공의를 대체하는 것 뿐 아니라 일반 간호사들도 불법 의료행위를 시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PA는 주로 전공의들이 부족한 기피과에서 의사 대신 봉합, 절개, 처방 등을 한다. 그러나 의료사고가 발생할시 당초 의료법에서 벗어난 불법의료행위로 간주돼 보호를 받을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의사 수 늘려도 기피과 지원 안 해…강력한 정부 정책 마련 필요

이에 대해 의협은 기피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아무리 확대해도 의료계에 자리잡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인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13년 뒤에 배출된다"며 "증가된 의사 인력이 현재 문제가 된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가 돼야 회복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렇게 늘어난 의사들이 현재 기피과에 지원할 것이란 확신이 없다는 게 의협의 분석이다. 이 회장은 "정부는 당장 올 하반기 내년 전공의 지원 시 기피과에 인턴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강력한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신 의료 인력의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우려했다.

인구 감소와 의료수요 증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와 정부가 수요와 의사 인력 공급 현황을 정기적으로 파악해 의대정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 회장은 "저출산 흐름으로 인한 소아과 의사 감소, 수도권 내 상급종합병원 6000병상 건립 현상을 그대로 두고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정부는 명확한 확답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등 인력 공급 문제를 의협과 신중하게 논의,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워낙 오래전부터 언급된 문제인 만큼 빠른 시일 내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의료계와 다양한 협의를 거쳐 합의된 문구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