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관련 입법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지난 11일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의결했다. 주로 시세 조종과 부정거래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1년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법) 개정안 시행으로 본격적인 가상자산 규제가 시작됐다. 특금법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와 지갑사업자, 보관업자 등에 대해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국내외 입출금을 감시한다. 하지만 결국 법시행으로 시장 제약이 생겼을 뿐, 제도권으로 품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발행 규제공백에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 해외로

국내 가상시장 규제공백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ICO(가상자산공개)가 첫 손에 꼽힌다. 지난 2018년 금융위원회는 ICO를 전면 금지했고, 이후 국내에서는 신규 코인 발행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블록체인 기술의 생태계 구성을 위한 첫 단추지만, 주식시장과 달리 발행 규제가 없다보니 편법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발행된 가상자산의 수량과 운용 지침도 없을 뿐더러 중요 정보에 대한 공시 의무도 없다.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ICO 규제 체계 마련과 진흥기관 설립을 국정과제로 명시했지만, 이후 후속과정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이에 수백여곳의 국산 가상자산 발행업자들은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두바이 등으로 넘어가 코인을 발행하고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자체 발행 뿐만 아니라 기업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기 힘든 구조도 한계다.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모든 벤처 인증 규제 완화 정책을 폈지만, 블록체인 기업은 여기서도 배제됐다. 자금 조달까지 해외에 의존하다보니 성장에 제약이 걸리거나, 처음부터 모든 사업을 해외 기반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국내 가상자산 업체로 각광을 받았던 페이코인은 결국 국내 거래소에서 퇴출, 중국 국영 금융사 유니온페이와 제휴를 맺었다. 싱가포르통화청(MAS) 라이선스를 발급받아 한국 비즈니스 대신,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사업 기반을 넓혀 간다는 계획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 인증도 안되는 등 각종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몸집 불리기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미국, 아랍 등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시장 몸집 줄이기가 투자자 보호?…편법만 늘어

규제 공백으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축소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상품인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파생상품을 출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내산 가상자산에 대한 편견으로 거래소들도 몸사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상반기 5대 거래소의 신규 거래지원(신규 상장)건수는 154건, 거래중단(상장폐지) 건수는 147건으로 엇비슷했다. 테라·루나 사태 발생 이후인 하반기 이 수치는 32(신규상장)대 78(상장폐지)로 나타났다. 폐지가 상장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전반적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장 활력도 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금법이 시행된 2021년 이후 원화 거래가 가능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도 4개(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로 한정됐다. 2022년 고팍스가 전북은행과 제휴, 원화거래를 트면서 이 대열에 합류했지만, FTX 파산 사태로 휘청거리면서 글로벌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피인수 되는 등 시장의 부침은 적지 않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수는 27개다. 원화 거래가 가능한 5개 거래소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97%, 나머지 27개 사업자는 3%의 점유율을 나눠가진다. 대다수 이용자들이 소수 거래소만을 사용하다보니 선택지도 좁아졌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비교 / 금융정보분석원
국내 가상자산 시장 비교 / 금융정보분석원
FIU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하반기 국내 투자자들의 일평균 거래금액은 11조 3000억원 이었으나, 2022년 상반기 5조 3000억원으로 53% 줄어들었다.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이 발생한 이후인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도 43% 감소한 3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남국 사태에서 보듯, 시장 위축은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만들어 냈다. 5대 거래소 중심의 시장구도가 고착화하고, 정보 불균형이 심화하다 보니 가상자산이 제대로 된 시장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투자를 하는 사람도 방향성을 잃고 흔들리게 된 것이다. 시장으로서 먼저 기능해야 질서도 잡힐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는 "현재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또는 할 수 없는지 알 수 없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거래 업체가 제대로 된 사업자인지, 사기꾼인지 알기 어렵다"며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행위 규제, 발행자에 대한 규율 등 구체적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