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앞두고 사업 종료를 선언한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면서 추후 국내 비대면진료 사업이 정상적으로 제도화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비대면진료가 일반 진료보다 수가도 높아 건강보험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면서 산업계는 플랫폼 기업들과 무관한 일이라며 해명에 나선 상태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구성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구성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관련 업계에 따르면 6월부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전환이 시작되는 가운데 남성 전문 건강관리 플랫폼 ‘썰즈’가 남성 비대면진료 중개 및 약 배송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썰즈는 트러스트랩스가 운영하는 남성 메디컬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올해 4월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벤처 기업이다.

썰즈는 이달 발표된 정부 시범사업안을 통해 초진과 약 배송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비대면진료 사업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시범사업이 운영되기 전부터 서비스 철수를 단행하거나 고민하는 업체들이 등장하자, 18개 플랫폼 업체들로 구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은 정부의 방침대로 사업을 운영하게되면 대부분의 기업이 문을 닫아야 한다며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있다.

원산협 관계자는 "복지부는 실현 불가능한 시범사업안을 내놔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시범사업은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금지하는 반(反)비대면진료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한적인 시범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관련 발언과 정면충돌한다"며 "몇 십년 전부터 해온 시범사업과 무엇이 다르고 규제개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업계가 이번 시범사업안에 강한 불만을 품은 이유는 그간 주장해온 초진 환자 진료와 약 배송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30일 공개한 비대면 진료 대상은 1회 이상 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재진 환자로, 해당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같은 질환에 대해 1회 이상 대면해 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로 제한한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1년 이내 대면 진료 경험이 있으면 진료가 가능하다.

만성질환에는 고혈압, 당뇨병, 정신 및 행동장애, 호흡기결핵, 심장질환, 대뇌혈관질환, 신경계질환, 악성신생물 등 만성질환관리료 산정 대상에 해당하는 환자를 포함한다. 인천 백령도, 연평도 등 요양기관까지 거리가 먼 섬·벽지 환자,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는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특히 만18세 미만 소아 환자도 재진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평일 오후 6시(토요일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 사이에는 대면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처방이 없는 의학적 상담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원칙으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희귀질환자가 수술·치료 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할 경우 가능하다.

감염병예방법 상 1·2급 감염병 확진 환자는 치료기간 중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필요한 경우만 초진을 허용한다.

이에 원산협은 "이번 시범사업안을 만들 때 협의회를 포함한 업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았다"며 "지난 당정협의회에서 발표한 초안보다 더 퇴보한 안이 나오면서 국민 모두가 피해와 불편을 겪게 됐다"고 비판했다.

백재욱 도봉구의사회 총무이사가 30일 서울 도봉구 한 의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비대면진료 실행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 뉴스1
백재욱 도봉구의사회 총무이사가 30일 서울 도봉구 한 의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비대면진료 실행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 뉴스1
특히 산업계는 초안 발표부터 확정까지 2주밖에 걸리지 않은 졸속 추진이 이뤄졌다며, 충분한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채 최종안을 확정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 비대면진료 수가가 의사 진찰료, 약사 약제비 각각에 시범사업 관리료를 진찰료나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의 30% 수준을 각각 덧붙이는 형태로 책정되면서, 건강보험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 상황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은 "의·약사가 비대면진료 또는 약배송으로 받아낼 수가가 앞으로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과 같아야 할지 의문이다"며 "130%로 책정됐는데, 상시적 활용을 앞둔 시점에서 동일하게 책정하는 게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산협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도 원격진료 수가가 일반진료보다 높은 국가는 찾기 어렵다"며 "수가는 산업계와 무관한 수익으로, 관련된 불필요한 오해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잘못된 정보는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건강보험 적립금 소진 속도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진료가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이 돼서는 안된다"며 "비대면진료는 의료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누릴 수 있다는 편의성이 높이는 반면, 재정적 부담은 줄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여론들이 플랫폼 사업자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사업은 환자 중심적이며 의사의 판단아래 ‘제한 없는’ 진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 것이다"며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플랫폼 사업을 단순 돈벌이 용으로 평가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