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차례 응급의료 계획을 공개했음에도 여전히 응급실이 없다는 이유로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이따르면서 정부가 또 다시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응급의료 긴급대책이 이전보다 개선된 방향은 맞지만, 그럼에도 실제 응급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 당국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병원을 전전하다 숨지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응급의료 긴급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에는 ▲중경증 이원화 ▲정보관리 인력 확대 ▲비번 집도의 추가 수당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당정이 응급의료에 대한 긴급대책을 공개한 이유는 5월 30일 새벽 경기도 용인에서 차량에 치인 70대가 수술 가능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다 2시간여 만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은 신고 접수 10분 만에 이 환자를 구조해 인근 대형 병원 11곳에 이송 여부를 문의했으나 중환자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이 거부됐고, 사고 발생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구급차에서 심정지를 일으켰다.

연이은 응급의료 계획에 추가 대책 나와도 뺑뺑이 사고 지속

정부는 올해 2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는 등 응급실 뺑뺑이 사망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후 3월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돌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이후 4월 당정은 중증의료센터를 40개에서 60개소로 확충하고, 수술 입원 등 최종 치료가 가능하도록 기능을 개편하는 한편, 중증응급 분야 건강보험 수급인상 및 야간 휴일당직비 지원 등 응급의료 근무 요건을 개선하는 추가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가 또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책에 실효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박대출 정책위원회 의장은 "응급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해 이른바 뺑뺑이 돌다가 구급차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지난달 5일 원스톱 환자 이송 시스템 구축, 의료진 근무 여건 개선을 포함한 응급의료대책을 발표했고 정부가 현장 조사를 했는데도 상황 개선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우선 당정은 이와 같은 사고의 원인을 응급 수술 의사와 중환자실 병상 부족, 경증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 체계 부실 등을 꼽았다.

이에 정부는 응급환자 진료 체계를 지휘하는 지역별 컨트롤타워인 ‘지역응급 의료상황실’을 설치하고 환자의 중증도와 병원 상황을 감안해 환자 이송 전원을 지휘하고, 이송되는 환자는 병원에서 반드시 수용하도록 강제하기로 했다.

또 환자가 배정됐을 때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와 일반 경증 환자를 분리해, 경증 환자의 병상을 빼고 중증 환자 배정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증 환자의 경우 구급대가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이하 기관으로만 이송하도록 규제해, 중증 환자를 권역응급센터에 배정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아울러 당정은 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 등에 설치된 종합 상황 정보를 현장에서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 인력을 확충하고, 필수 응급 의료진 확보를 위해 의료진에 대한 각종 지원 대책도 마련했다.

박대출 의장은 "구급대원이 병상이 있는지 이 병원 저 병원 전화를 돌리는 것도 개선돼야 하고, 응급실 여력이 있다고 해서 도착했는데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도 사라져야 한다"며 "어떤 것도 국민 생명, 건강보다 우선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응급현장 이해 부족 여전…의료계, 근본적인 문제 해결 요구

정부의 발표에도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은 여전히 해당 대책들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중증외상환자라면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응급실에 받을 수 있다며 무조건 가까운 응급실에 빨리 환자를 내려놓는 게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 진료능력 부족으로, 그 환자를 치료할 만큼의 의료자원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없었다는 점이 핵심이다"며 "응급의료진들을 희생양 삼아 공분을 돌린다고 예방 가능한 응급, 외상환자 사망률이 떨어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작정 응급실로 환자를 밀어 넣게 되면 치료결과를 장담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의료진이 의료과실 등으로 민·형사 소송을 감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의사회는 "이송문의 거절에 대한 언론재판과 실제 법적 처벌까지 가시화될 때 응급의료진들의 이탈은 가속화되고 응급의료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의료계는 ▲상급병원 과밀화 해결 ▲경증환자 119 이송 및 응급실 이용자제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이용행태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유사한 정책을 마치 말만 바꿔 발표하는 식의 정부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일부 의료계에서는 응급의료기본계획 3차와 4차가 90% 가량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나아가 2월 발표된 응급의료 기본계획에서 이미 중증의료센터를 50~60개로 늘린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4월 당정 추가대책에서도 중증의료센터 60개 확충을 내세우는 등 같은 말만 반복하는 보이기식 행정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나서 의료계와 협력해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아야만 한다"며 "현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정부의 노력은 알고 있으나, 아직 응급의료현장은 피부로 체감할 정도의 변화가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