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던 현대자동차가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동시에 그동안 지나온 길을 되짚는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브랜드 고유의 유·무형 자산과 에피소드를 찾아 나섰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작점에 선 현대차가 과거 도전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역사에서 찾아야 했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IT조선이 현대차의 과거를 알아가며 미래를 본다. [편집자주]

현대자동차 ‘아반떼’는 1990년 출시 이후 33년간 7세대를 거치며 국내 대표 준중형 세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반떼는 국내 첫 준중형차, 스테디·베스트셀링카, 생애 첫차, 오빠차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졌다. 최근 7세대 모델 출시로 주행성능, 디자인 모두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 모델 중 하나로 추가돼 고성능 세단으로 진화했다.

엘란트라, 준중형 세단의 탄생

아반떼의 첫 이름은 1990년 출시된 ‘엘란트라’다. 엘란트라는 소형 모델 ‘포니 엑셀’과 중형 모델 ‘스텔라’, ‘쏘나타’ 라인업 사이를 메우기 위해 탄생했다.

현대자동차 ‘엘란트라’.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엘란트라’. / 현대자동차
엘란트라는 준중형이라는 타이틀을 처음 사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준중형은 국내 마케팅 용어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승용차 종류는 경형, 소형, 중형, 대형으로 분류한다. 준중형은 없다.

1980년대 소형차는 아쉽고 중형차는 부담스럽지만 스텔라를 구매하기에 차급 대비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은 소비자들의 갈증이 있었다. 더불어 포니와 ‘엑셀’의 성공적 수출 이후 수출 실적을 가속화할 전략 차종도 필요했다. 이는 엘란트라 탄생의 배경이 됐다.

엘란트라 출시 전 1980년대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 승용차의 대중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따른 도로망 확대 등으로 소비자들의 승용차 구매 욕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소형차와 중형차만 있던 시기에 소비자들이 차급을 갑자기 높여 구매하기에 부담이 컸다.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가 독일 아우토반에서 포르쉐 차량과 달리는 광고 영상.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가 독일 아우토반에서 포르쉐 차량과 달리는 광고 영상. / 현대자동차
이때 중형차급에 1500cc 미만인 적은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한 모델들이 나왔다. 배기량 1439cc의 중형 세단 스텔라가 대표적이다. 당시 배기량 1500cc 미만 차량은 소형차로 분류돼 자동차세를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형차급에 걸맞지 않은 적은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해 중형차다운 성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현대차는 1985년 ‘J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엘란트라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비만 4100억원을 들였다. 엘란트라의 광고문구는 ‘고성능 세단’이었다. 엘란트라는 배기량 1596cc, 최대출력 126마력의 성능을 갖춰 출시됐다. 스텔라의 배기량 1439cc, 최대출력 92마력과 비교해 차체는 더 작지만 성능이 월등했다.

또 엘란트라는 초기 디자인부터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모델이다. 디자인은 당시 유행하던 각진 스타일에서 벗어나 곡선이 강조된 공기역학적 설계가 돋보였다.

2세대 차명 아반떼 첫 사용 후 3세대 중국서 인기

아반떼라는 이름은 1995년 2세대 모델을 출시하며 등장했다. 아반떼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앞으로’라는 의미다. 차명 엘란트라는 현재까지 수출명으로 남겨졌다.

현대자동차 2세대 ‘아반떼’.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2세대 ‘아반떼’. / 현대자동차
2세대 아반떼는 1.5리터(ℓ) 알파와 1.8ℓ 베타 엔진을 탑재하는 등 부품 국산화율 99.88%를 이룬 모델이었다. 디자인 역시 한국적 요소가 가미됐다. 고려청자의 곡선에서 영감받은 선을 강조했으며 기존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을 하단에 배치한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아반떼의 모델 다양화도 시도됐다. 왜건형 모델 ‘아반떼 투어링’, 연소 효율을 끌어올려 배출가스를 줄이고 연비를 향상시키는 희박연소 엔진을 탑재한 ‘아반떼 린번’도 출시됐다.

다만 시도에 그쳤다. 아반떼 투어링은 소비자의 낮은 왜건 선호도를 입증했다. 1998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출시된 아반떼 린번은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를 세로로 막은 디자인으로 BMW 키드니 그릴을 연상시켜 이전 모델 대비 디자인 호평을 받지 못했다. 연비 향상을 강조한 아반떼 린번은 당시 ‘한번 기름 넣고 서울-부산 왕복’이란 광고문구를 사용했다. 하지만 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IMF 사태 등으로 경제성 있는 차량을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2세대 ‘아반떼 투어링’.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2세대 ‘아반떼 투어링’. / 현대자동차
3세대 모델은 ‘아반떼 XD’다. 2000년 출시된 아반떼 XD는 큰 변화를 맞은 모델이다. 디자인은 보수적으로 변하고 성능은 역동성이 강조됐다. 디자인은 이전 모델 대비 각진 스타일이었다. 차체 크기는 엘란트라와 비교해 전폭 45밀리미터(㎜), 축간거리 110㎜가 늘었다. 최고출력 147마력의 2.0ℓ 엔진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추후 5도어 해치백 모델을 출시하며 단단한 승차감의 역동적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소형차 분류 배기량 기준이 1500cc 미만에서 1600cc 미만으로 높아졌다. 이에 맞춰 1.6ℓ 가솔린 엔진을 추가했다. 아반떼 모델 중 처음으로 디젤 엔진도 적용됐다.

현대자동차 3세대 ‘아반떼 XD’.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3세대 ‘아반떼 XD’. / 현대자동차
아반떼 XD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아반떼다. 2003년 12월 중국공장에서 178대 생산을 시작으로 아반떼의 해외 생산이 본격화됐다. 특히 중국 대도시에서 택시로 활용되는 등 2005년 중국 내 전 차종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4세대 첫 하이브리드 이어 5·6세대 날렵한 디자인·첨단사양 진화

4세대 모델은 2006년 출시된 ‘아반떼 HD’다. 아반떼 HD에는 현대차가 새롭게 개발한 1.6ℓ 감마 엔진이 처음 적용됐다. 디자인은 3세대 대비 다시 곡선이 강조됐다.

현대자동차 4세대 ‘아반떼 HD’.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4세대 ‘아반떼 HD’. / 현대자동차
현대차의 품질 경영을 인정받은 모델이기도 했다. 아반떼 HD는 2009년 미국 시장조사업체 J.D. 파워가 시행한 초기 품질 조사(IQS)에서 준중형차 부문 1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액화석유가스(LPG) 하이브리드 모델로 최초의 국산 하이브리드차이자 LPG를 사용한 세계 첫 하이브리드차였다.

5세대 모델은 2010년 출시된 ‘아반떼 MD’다. 아반떼 MD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를 바탕으로 유려한 곡선이 강조된 날렵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감마 1.6ℓ GDi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처음으로 적용하고 차체 강성을 높이는 등 상품성을 향상시켰다.

현대자동차 5세대 ‘아반떼 MD’.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5세대 ‘아반떼 MD’. / 현대자동차
아반떼 MD는 높은 상품성을 바탕으로 2012년 북미 올해의 차, 2012 캐나다 올해의 차 등을 수상했다.

전반적으로 날렵한 디자인은 젊은 고객층을 노리기 충분했다. 현대차는 2013년 아반떼 MD의 2도어 쿠페 모델을 선보이며 젊은 고객층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6세대 모델은 2015년 출시된 ‘아반떼 AD’다. 아반떼 AD 디자인은 정지 상태에서도 달리는 듯한 정제된 역동성을 주제로 했다. 날렵한 인상이 가득한 아반떼 MD와 달리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차분해졌다.

현대자동차 6세대 ‘아반떼 AD’.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6세대 ‘아반떼 AD’. / 현대자동차
아반떼 AD는 더욱 편해진 승차감, 핸들링 성능 등 탄탄한 기본기로 주목받았다. 또 7개 에어백, 앞좌석 어드밴스드 에어백 시스템을 전 모델에 기본 탑재했다. 스마트키를 소지한 채 트렁크 주변에 3초 이상 머물면 자동으로 트렁크가 열리는 스마트 트렁크를 국산 준중형차 최초로 적용했다.

2016년에는 아반떼 AD에 1.6ℓ 터보 엔진을 장착한 스포츠 모델을 출시해 운전의 재미를 찾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호평받은 7세대 디자인, 고성능 N 모델까지 합류

7세대 모델은 2020년 출시된 ‘올 뉴 아반떼’(CN7)다. 올 뉴 아반떼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 ‘파라메트릭 다이내믹스’(Parametric Dynamics)를 반영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날렵한 눈매에 다각형이 새겨진 측면 캐릭터 라인 등 혁신적 디자인이 적용됐다.

현대자동차 7세대 ‘올 뉴 아반떼’.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7세대 ‘올 뉴 아반떼’. / 현대자동차
또 새로운 3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전 모델 대비 전고를 20㎜ 낮추고 전폭을 25㎜ 높이면서도 축간거리를 20㎜ 늘려 날렵한 디자인에 주행 안정감과 실내 거주성을 높였다. 가솔린, LPG,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선보여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올 뉴 아반떼는 2021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올 뉴 아반떼는 ‘N 라인’ 모델을 선보였다. 올 뉴 아반떼 N 라인은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1.6 터보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04마력의 성능을 갖췄다.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1.6 MPI 엔진을 탑재한 기존 모델의 최고출력이 123마력인 점을 고려하면 월등히 높은 성능이다.

현대자동차 ‘아반떼 N’.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반떼 N’. / 현대자동차
2021년에는 ‘아반떼 N’을 출시해 아반떼가 본격적으로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 모델에 합류했다. 플랫파워 엔진에 8단 습식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가 적용된 아반떼 N은 최고출력 280마력에 이른바 ‘팝콘 사운드’를 내는 능동 가변배기 밸브를 적용해 운전의 즐거움을 더했다.

올해에는 올 뉴 아반떼 출시 이후 3년 만에 페이스리프트 모델 ‘더 뉴 아반떼’를 출시했다. 더 뉴 아반떼는 파라메트릭 다이내믹스 디자인을 더욱 강조하고 수평 그래픽 요소를 추가해 더욱 넓어보이는 외관 디자인을 선보였다. 더 뉴 아반떼는 스마트폰 차량제어를 안드로이드폰에서 아이폰까지 확대한 ‘디지털 키 2 터치’ 등 첨단 상품성을 더욱 강화했다.

차체·성능 탈준중형 추구하며 글로벌 인기 가속화

아반떼는 엘란트라부터 올 뉴 아반떼에 이르기까지 차체가 더욱 커졌다. 준중형으로 태어났지만 거주성, 편의사양 등 세대를 거듭할수록 준중형을 벗어난 이미지를 갖고자 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아반떼’.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더 뉴 아반떼’. / 현대자동차
차량의 전체 길이인 전장만 놓고 보면 엘란트라는 4375㎜, 가장 최근 출시한 더 뉴 아반떼가 4710㎜로 7세대를 거치며 335㎜ 늘었다. 전장이 줄어든 시기는 아반떼 XD(4510㎜)에서 아반떼 HD(4505㎜)로 넘어 온 시기 뿐이었다.

아반떼의 인기는 판매량으로 입증됐다. 엘란트라는 첫 출시 이듬해인 1991년 국내 판매량 9만대를 넘긴 데 이어 1994년 16만5000여대가 판매되는 등 인기를 누렸다.

디자인의 혁신을 보여준 2세대 모델은 1996년 국내 판매량 19만2109대로 아반떼의 연간 국내 최다 판매량으로 현재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 ‘아반떼’ 라인업.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반떼’ 라인업. / 현대자동차
5세대 아반떼 MD에 들어서면서 2014년 10월 아반떼 글로벌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했다.

7세대 올 뉴 아반떼는 국내 사전계약 시작 하루 만에 1만58대로 1만대를 돌파하며 역대 아반떼 중 최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반떼는 현재 글로벌 누적 판매량 1500만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아반떼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1476만2924대다. 국내에서만 321만6900대 팔렸다. 해외에서는 2배 가까운 638만1769대 판매됐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