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따뜻한 소리 만듭니다” 베이비부머 KT맨의 ‘인생 2막’

2019-08-10     이광영 기자

[인터뷰] 한동훈 한오디오랩 대표

전설적인 영국 록 그룹 퀸의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가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울려퍼진다.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편안함이 귀로 느껴졌다. 진공관 앰프를 통해 뿜어내는 소리의 매력이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오롯이 음악만 집중해서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감성이 지배한 6분은 그렇게 순식간에 흘렀다.

한동훈 한오디오랩 대표는 정통 KT맨이다. 이 회사에서만 37년을 몸담고 퇴직했다. 네트워크본부 데이터통신팀장, 기간망본부 인터넷통신팀장, G&E운영총괄 서비스딜리버리본부장, 홈고객부문 서울남부마케팅단장을 거쳐 경영지원부문장(부사장)과 KT텔레캅 대표를 역임했다.

KT 퇴직을 앞둔 이 58년생 베이비부머는 새로운 꿈을 꿨다. 취미로 했던 진공관 앰프 제작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인생 2막’을 열기로 한 것이다. 2017년 9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자그마한 공간에 ‘한오디오랩’을 설립한 계기다.

한 대표는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가’라는 고민을 했고 해답은 결국 오랜기간 취미였던 음향기기 제작이었다"며 "취미를 사업으로 가져가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지인의 적극적인 제언과 응원에 힘입어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한동훈 한오디오랩 대표. / 이광영 기자
◇ 진공관 앰프와 사랑에 빠지다

한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잡지에 실린 ‘트랜지스터 1개를 사용한 금속탐지기 제작’이란 제목의 기사를 봤다. 이 내용에 매료된 그는 곧장 청계천 세운상가로 달려가 필요 부품을 구매했다. 음향 기기 제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다.

경희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에는 2년간 방송국에서 음악 감상 및 방송장비 운영·관리를 도맡았다. 음향 기기에 대한 그의 애정은 점점 깊어갔다.

한 대표는 "선배, 동기, 후배와 프로그램 제작을 수행한 순간은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기였다"며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향기기가 작동할 때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고 말했다.

KT에 입사한 후에도 그의 취미 활동은 멈출줄 몰랐다. 한 대표는 방송국 활동 이후 47년간 자신만의 공간에 납땜인두와 각종공구, 전자부품 등을 항상 비치했다. 이렇게 모은 장비와 부품을 활용해 진공관앰프 제작 및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정작 음향기기 만들 시간은 없었다. 여기에 몰두할 수 있을 때는 일년에 딱 두번 밖에 없었다. 바로 설과 한가위다.

한 대표는 "평상시 만들고 싶었던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몇달간 부품을 모으다가 명절 연휴를 이용해 작업을 했다"며 "명절 일정을 잘 챙기지 못하다 보니 아내에게 혼날 때도 많았다"고 웃지 못할 뒷얘기를 털어놨다.

한 대표는 직접 제작한 진공관 앰프를 스피커, LP, CD플레이어 등 패키지로 구성해 지인에게 원가로 제공했다. 입소문을 타자 그가 만든 진공관 앰프를 제공받은 사람만 수십명에 달했다.
KT에서는 ‘진공관앰프 만드는 직장인’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6년 전 지인 집에 설치한 진공관 앰프를 점검차 최근 방문했다. 6년 만에 테스트해보니 초기 품질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진공관은 소모품이다. 통상적으로 1년에 한번 점검을 해야하는 만큼 초기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스스로 100% 만족하지 않으면 제품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이같은 결과물을 만든 셈이다. 이는 한 대표가 사업화를 결정한 밑바탕이 됐다.

진공관 앰프. / 이광영 기자
◇ "풍요로운 음악 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 될 것"

한 대표에 따르면 진공관 앰프는 소리를 포근히 감싸 안아 부드럽고 풍성한 음을 낸다. 날카롭고 선명하며 과도한 다이내믹스를 자랑하는 트랜지스터식 앰프와 달리 따뜻한 감성을 전해주는 매력이 있다.

한 대표는 "통상 50~60대의 가청 주파수 대역은 12~13KHZ인데 더 높은 대역을 들려주는 트랜지스터식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는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며 "반대로 진공관 앰프는 하루 종일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아 편안한 소리를 듣길 원하는 50대 이상의 주문 요청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오디오랩은 공간 크기 및 고객 선호 음악 장르에 따라 맞춤형 앰프를 제작한다. 하나는 개인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음악에 몰입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싱글앰프’다. 주로 보컬 위주의 음악이나 소편성 오케스트라 장르에 적합하다. 거실과 같은 공간에서 다이내믹하고 임팩트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재생하는 출력 높은 ‘푸시풀앰프’도 있다. 소편성은 물론 심포니나 협주곡과 같은 대편성 장르에서도 적합한 사운드를 구현한다.

진공관 앰프에는 스트리밍 트렌드를 충족하기 위해 블루투스로 연결해 들을 수 있는 기능도 탑재했다. 음악적 취향과 세팅 환경을 파악하고 부품 주문·제작·설치까지 4~6주쯤 걸린다. A/S는 무료다.

한 대표는 자신의 음악적 로망을 충족하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거실이든 개인 공간이든 어디든 상관없다. 음악을 좋아하고 인생의 한 파트너로 가져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진공관 앰프는 잊었던 감성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의 진공관 앰프가 집안에 설치되기까지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남편들을 많이 봤다"며 "하지만 다음날 연락이 와서 ‘소리가 좋다, 아내에게 칭찬받았다’는 반응을 한다. 그럴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떨어져 나와 공기업을 거쳐 민영화한 KT. 그 역사를 처음부터 지켜본 한 대표다. 전 직장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 한 대표는 "비즈니스 초기 계획부터 출하까지 단계별 업무는 물론 일반 사무, 엔지니어, 회사 경영까지 대부분을 경험해봤다"며 "당시 배운 지식들이 1인 기업을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KT시절과 지금 중 언제가 더 행복하냐고 물었다. 업무에 쫓기던 KT 시절도 행복했고, 여유가 생긴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쪼개 취미생활을 할 정도로 바삐 살던 KT 시절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 대표는 주문을 받아 제작·설치하고 고객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며 커뮤니케이션하는 모든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고객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란 생각에 정성을 기울여 진공관 앰프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진공관앰프 제작으로 오랜 시간 들어도 피곤하지 않은 따뜻하고 온화한 소리를 구현하고 싶다"며 "한오디오랩은 인생을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풍요로운 음악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