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에 파운드리도 지갑닫기… 삼성만 홀로 투자 외길

2022-11-20     이광영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IT 수요 증가와 공급망 차질로 공급 부족을 겪은 반도체 업계가 최근 급격한 수요 둔화로 매서운 한파를 겪고 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메모리 기업들이 감산 및 투자 축소에 나선 가운데 비교적 경기를 덜 탄다고 평가받는 파운드리에서도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 소식이 잇따른다.

18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D램 매출은 181억8700만달러로, 2분기(255억9400만달러)에 비해 28.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트렌드포스는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두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라며 "가전 제품 수요가 지속 감소하면서 계약 가격이 전분기 대비 10~15% 하락했고, 비교적 견조했던 서버용 D램 출하도 눈에 띄게 둔화됐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론 본사 모습 / 조선DB
꽁꽁 얼어붙은 시황에 메모리 반도체 3위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반도체 공급을 줄이고 설비투자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크론이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량을 직전 분기보다 20% 줄이고, 설비투자도 추가로 축소하기로 했다고 16일(현지시각) 밝혔다.

2023년 전망도 밝지 않다면서 D램 공급은 올해보다 줄어들고, 낸드플래시도 한 자릿수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정보기술(IT)산업 환경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율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올해 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영향 등에 따른 PC와 스마트폰 수요 둔화에 대한 경고음을 처음으로 낸 기업이다.

D램 5위 윈본드는 대만 타이중 센트럴 타이완 사이언스 파크 내 생산시설의 4분기 생산량을 30% 이상 감축한다고 밝혔다.

낸드플래시 3위 일본 키옥시아는 10월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쯤 줄였다.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도 2023년 현금성 설비투자액을 당초 계획보다 20%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역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2023년 투자 규모를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일정기간 동안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수급 밸런스가 정상화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금융위기 상황인 2008~2009년 업계 시설투자 축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투자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며 "업계 재고가 매우 높은 탓에 SK하이닉스는 생산 증가를 위한 웨이퍼 캐파(생산능력)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설 투자는 50% 정도를 약간 웃도는 수준의 감소를 생각하지만, 추가적인 감소도 일부 검토 중이고 장비 투자와 인프라 투자 비율도 줄어들 것이다"라며 "수익성이 낮은 제품들을 중심으로 우선 웨이퍼 투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들도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 및 연기에 나서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가 올해 시설투자액을 9.1%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세계 3위 UMC도 시설투자 규모를 36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16.7% 줄였다.

국내 2위이자 세계 10위권 파운드리 기업인 DB하이텍은 생산능력을 월 15만장(웨이퍼 투입량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시기를 올해 말에서 2023년 상반기로 연기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 삼성전자
반면 삼성전자는 10월 말 열린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을 통해 밝힌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10월 27일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시장 수요가 위축된 것은 맞지만 선제적으로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며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시설투자(CAPEX)도 계획대로 진행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에 29조 100억원을 투자했다. 4분기에는 18조원을 더 투입한다. 연간 총 47조 7000억원 규모다. 2021년 43조 6000억원을 시설투자비에 썼던 것을 고려하면 4조원 이상 더 쓴다.

한 부사장은 CAPEX와 관련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풋(input) 투자를 지속하고, 업황과 연계해서 설비투자를 유연하게 운영한다는 투자 기조는 동일하다"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이익 기반을 만들어나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와 달리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메모리 업계 1위의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단기적 수요 부진을 이겨낼 만큼 원가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내년 메모리 업황이 반등할 경우 감산을 택한 업체들보다 빠르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모두 글로벌 1위 업체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경쟁사 대비 유리하며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120조원 이상으로 감산할 필요가 없다"며 "유동성 걱정도 없고 오히려 인수합병(M&A) 기회도 노릴 만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