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곧 기회? '120조원' 실탄 쥔 삼성의 자신감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보유한 현금이 120조원을 넘었다. ‘반도체 한파’를 견디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충분한 자금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업황 악화에도 감산 대신 공격적인 투자 카드를 꺼냈다. 풍부한 현금 자산을 활용해 반도체 분야 역량 강화와 인수합병(M&A) 등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현금 자산은 현금, 현금성 자산이나 단기금융상품 등으로 회사가 1년 동안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자금을 말한다. 기업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차입금이 적을수록 투자 여력이 커진다.
삼성전자는 충분한 현금을 쌓아뒀기에 위기 대응이나 투자에 있어 경쟁사 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인텔,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이 ‘긴축’을 외치는 가운데서도 나홀로 "감산은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배경이다.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올해 시설투자에만 54조원을 쏟아붓는다. 2021년 투자액(48조 2000억원)보다 12% 늘었다. 3년 전인 2019년(20조원대)과 비교하면 투자 규모가 두 배쯤 늘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 시설투자에만 47조 7000억원이 투입된다.
관련해 삼성전자는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의 경우 평택 3~4기 인프라와 중장기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한 극자외선(EUV) 등 첨단 기술 중심 투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파운드리는 ‘쉘 퍼스트(Shell First)’ 전략으로 수요에 신속·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 하에 EUV 첨단 공정 수요 대응을 위한 미국 테일러·평택 생산 능력 확대를 중심으로 투자가 집행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기술 초격차’를 위한 연구개발(R&D) 역량도 강화한다. 삼성전자의 3분기 R&D 투자액은 18조 4556억원으로, 2021년 3분기 16조 1856억원보다 2조 2700억원(14%) 늘었다.
메모리 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급이 줄지 않으면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버틸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쳐진다.
삼성전자는 ‘치킨게임’을 버틸 수 있는 풍부한 자금력과 함께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반도체 생산 규모를 갖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반도체 생산 원가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경험이 있다. 2007~2008년 반도체 업계에 메모리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졌을 때 삼성전자는 20나노미터 D램 원가 경쟁력과 생산 규모를 바탕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경쟁사였던 독일 키몬다와 일본 엘피다는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2008년과 2012년 차례로 쓰러졌다.
신사업 투자를 위한 인수합병(M&A)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글로벌 거물급 인사들과 잇따라 회동하고 있다. 이는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와 함께 미래 먹거리 모색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부회장도 1월 개최된 'CES 2022' 기자간담회 이후 지속적으로 "인수합병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곧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M&A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