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울트라’ 개막, 다시보는 ‘비운의 11세대 코어 프로세서’ [권용만의 긱랩]
공정 이슈에 매몰돼 버렸던 11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풀체인지급 변화' 새 공정의 동작 속도 문제, 공정과 아키텍처 분리 ‘백포팅’ 이색적 시도 현재의 14세대 이르기까지 주력 기술, 11세대에서 상당 부분 기반 마련
인텔이 지난 14일(미국시각) 드디어 14세대에 걸친 ‘코어 i’ 프로세서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코어 울트라(Core Ultra)’의 시대를 선언했다. 인텔의 새로운 브랜드 ‘코어 울트라’로 선보인 첫 프로세서는 지금까지 코드명 ‘메테오 레이크(Meteor Lake)’로 알려진 제품인데, 새로운 ‘인텔 4’ 공정과 칩렛 구조, 포베로스 3D 패키징 등 여러 모로 지금까지의 인텔 프로세서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여러 변화들이 한 번에 적용됐다. 14세대에 걸친 브랜드의 리부팅에 있어 여러 모로 ‘메테오 레이크’의 출시는 가장 좋은 기회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인텔의 브랜드 정책은 ‘과도기’를 지나고 있고, 모든 제품군이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으로 대체되지는 못했다. ‘코어 울트라’는 메인스트림 모바일 플랫폼을 위해 먼저 투입됐고, 기존 저전력 모바일 제품군인 U 시리즈나 고성능 모바일 제품군인 HX 시리즈, 데스크톱용 제품군인 S 시리즈는 기존 ‘랩터 레이크’가 투입됐다. 브랜드 또한 HX와 S 시리즈에서는 ‘14세대’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아마 이번 세대가 ‘코어 i’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14세대’에 걸친 코어 프로세서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몇 번의 ‘과도기’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과도기는 ‘11세대’ 였는데, 새로운 공정과 아키텍처로의 전환이 늦어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그 결실의 상당 부분은 ‘12세대’에 와서야 제대로 평가받는 상황이 됐다. 지금 와서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면, 기술적으로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면을 많이 갖췄지만 필요 이상으로 평가 절하된 세대가 ‘11세대’가 아닌가 싶다.
◇ 공정 전환의 대혼란 속에 나타난 의미있는 시도
지금까지 14세대에 이르는 코어 프로세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데스크톱용 플랫폼과 노트북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이 같은 아키텍처와 공정을 사용해 왔다. 이는 지금까지 인텔의 프로세서 제품들에서 공정과 아키텍처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미세공정으로의 전환이 순조로울 때는 문제가 없지만, 전환이 순조롭지 못할 때는 세대 교체 자체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나타난 시기가 5세대 ‘브로드웰’, 그리고 8세대 이후 11세대까지의 시기다.
5세대 ‘브로드웰’의 경우엔 14나노미터(nm) 공정으로의 전환이 다소 늦어져서, 데스크톱용 프로세서의 경우에는 출시 직후 바로 6세대로 넘어가 버리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서버용 ‘제온 v4’ 제품군에서는 이 브로드웰 아키텍처가 제대로 사용됐다. 8세대 이후로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는데, 10nm 공정으로의 전환은 8세대에서 예정됐었지만 공정 개발이 늦어지면서 차세대 아키텍처 기반 제품도 계속 늦어졌다. 결국 PC에서는 6세대부터 10세대까지, 서버는 1세대 제온 스케일러블부터 3세대 일부 모델까지 모두 ‘스카이레이크’ 아키텍처와 14nm 공정을 썼다.
화제의 10nm 공정은 8세대에서 아주 일부 모델에 실험적으로 사용됐지만, 결국은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모바일용 제품과 서버용 ‘3세대 제온’에 사용됐다. 이 초기 10nm 공정을 감안해 만들어진 아키텍처가 ‘아이스 레이크(Ice Lake)’다. 하지만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3세대 제온 프로세서 전체가 10nm 공정을 쓴 건 아니고,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데스크톱과 모바일 일부 제품, 그리고 3세대 제온에서의 4소켓 이상 지원 제품은 여전히 14nm ‘스카이레이크’ 기반이었다.
이 당시 ‘아이스 레이크’는 ‘스카이레이크’ 대비 같은 동작속도에서 20% 가까운 성능 향상을 제공하는 아키텍처였지만 기존 ‘스카이레이크’를 모두 대체하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크게는 ‘수율’과 ‘동작 속도’ 문제로 요약된다. 먼저, 당시 인텔은 10nm 초기 공정에서 충분한 생산량을 만들지 못해, 당시에는 프리미엄 모바일 제품과 주력 서버 제품군에 가능한 물량을 우선 투입하는 상황이었다.
동작 속도 또한 문제였다. 당시 ‘아이스 레이크’ 기반 프로세서들의 최대 동작 속도는 대부분 4GHz 초반대였는데, 이미 14nm 공정 기반 ‘스카이레이크’ 제품들은 5GHz 동작 속도를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새로운 아키텍처가 같은 동작속도에서 20% 성능 향상을 제공해도 동작 속도가 20% 낮으면 결국 현실적으로는 성능 향상이 없고, 때로는 신제품이 성능이 더 낮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심지어 데스크톱용 10세대 코어 프로세서 ‘코멧 레이크’의 i9 모델은 전무후무한(?) 10코어 20쓰레드 구성을 제공하는 상황이었고, 당시의 ‘아이스 레이크’는 이를 완전히 넘어서기 어려웠다.
이에, 데스크톱용 11세대 코어 프로세서 ‘로켓 레이크’에서는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선보인다. 바로, 차세대 10nm 공정 기반으로 설계된 ‘아이스 레이크’의 ‘서니 코브’ 코어를 14nm 공정 기반으로 재설계한 ‘사이프레스 코브(Cypress Cove)’가 등장한 것이다. 기존 설계를 새로운 공정으로 다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일이며, 이 경우는 심지어 ‘백포팅’이다. 그리고 로켓 레이크는 최대 8코어 구성으로, 이전 세대 ‘코멧 레이크’보다 오히려 코어 수가 두 개 줄었다. 하지만 같은 동작 속도에서 20% 향상된 성능에 이전보다 소폭 높아진 동작 속도를 확보해, 결국은 코어 두 개 차를 성능으로도 극복해 냈다.
11세대 ‘로켓 레이크’는 쉽지는 않았지만, 공정과 아키텍처 설계를 분리 구현하는 인텔의 숙원 과제 중 하나를 실증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새로운 코어 아키텍처 뿐만 아니라,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도 Xe 아키텍처 기반으로 바뀌었는데 이 또한 공정과 아키텍처 설계가 분리 구현된 사례다. Xe 아키텍처는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에서 데이터센터용 GPU에 이르기까지, 인텔 역사상 가장 다양한 공정으로 만들어진 아키텍처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에 사용된 Xe-LP만 해도 14nm, 10nm 슈퍼핀, 인텔 7 공정 등 공식적으로만 3개 공정으로 만들어졌다.
◇ 공정 이슈에 묻혀 버린 ‘풀체인지’급 변화들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데스크톱과 모바일용 제품에 사용되는 공정과 아키텍처가 다르다. 데스크톱에서는 당대 최고의 동작 속도를 제공하던 ‘14nm’ 공정과 이에 맞춘 ‘사이프레스 코브’를, 모바일에서는 10nm 공정에서 동작 속도를 4GHz 후반대까지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10nm 슈퍼핀’ 공정과 이에 맞춘 ‘윌로우 코브(Willow Cove)’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사용했다. ‘윌로우 코브’는 전 세대의 ‘서니 코브’ 대비 캐시가 대폭 늘었고, 보안 관련 기술들이 보강됐다. 특히 새로운 공정에 힘입어 동작 속도가 크게 올라간 게 특징이다.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기존 10세대의 연장선 상에서 변화를 주는 세대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 인텔이 11세대 코어 프로세서에서 선보인 변화들은 절대 ‘마이너 체인지’ 수준이 아니다. 모바일 플랫폼의 경우는 가히 ‘풀 체인지’라 할 만 한데, 새로운 공정을 기반으로 새로운 마이크로아키텍처와 Xe 아키텍처 기반 내장 그래픽 코어가 전격적으로 도입된 게 11세대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11세대 코어 기반 노트북은 최신 모델들 대비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지만, 10세대 이전의 모델들은 이제 좀 차이가 난다.
데스크톱 용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는 기존 14nm 공정에서도 새로운 마이크로아키텍처와 내장 그래픽을 갖추고 나왔다. 그리고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와 메인보드 소켓 호환성을 제공하면서도, 플랫폼 구성이 꽤 바뀐 것이 특징이다. 특히 PCIe 4.0 지원과 함께 그래픽카드 등을 위한 x16 이외에도 SSD 등을 위한 x4 레인이 추가된 게 특징인데, 이는 10세대 코어 프로세서 기반으로 설계된 400시리즈 칩셋 기반 메인보드에서는 대부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칩셋보다는 메인보드의 물리적 디자인 문제다. 덕분에 11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이에 맞춘 500 시리즈 칩셋 기반 메인보드를 사용해야 했다.
11세대 코어 프로세서에서 눈여겨볼 만한 또 다른 부분은 ‘명렁어 셋’ 지원이다. 10세대 코어 프로세서 중 ‘아이스 레이크’ 기반 모바일용 프로세서, 그리고 11세대 코어 프로세서 제품군에서는 인텔의 메인스트림 PC 용 프로세서로는 아직 유일하게 ‘AVX-512(Advanced Vector Extensions 512)’를 지원한다. AVX-512는 스카이레이크 아키텍처 기반의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와 이를 기반으로 한 하이엔드 데스크톱 프로세서인 ‘코어 X 시리즈’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런 프로세서는 일반 소비자용 ‘메인스트림’ 제품은 아니다.
11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AVX-512의 탑재는 지금 시점에서는 재평가가 필요할 만한 부분이다. 당시 PC 환경에서는 이 명령어 셋을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거의 없었고, 서버 환경에서 처리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화’ 차원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리누스 토발즈 등 유명 인사들이 이 11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AVX-512에 대해 혹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는 AMD의 최신 라이젠 7000 시리즈에도 AVX-512가 지원되고, ‘인공지능’ 시대가 주목받으면서 재평가의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스카이레이크 시절부터 인텔의 AVX-512 구현은 제품에 따라 다르다. 제온 스케일러블의 경우 골드 5000 시리즈까지는 AVX-512 유닛이 한 개인데, 이는 256비트 AVX2 유닛 두 개를 하나로 묶어 쓴다. 그리고 골드 6000 시리즈부터는 AVX-512 유닛이 두 개인데, 이는 256비트 AVX2 유닛 두 개를 묶어 만든 AVX-512 유닛 이외에도 AVX-512 전용 유닛 하나가 추가된 형태다. 그리고 PC용 프로세서에서는 제온 골드 5000 시리즈 이하의 모델처럼 AVX2 유닛 두 개를 하나로 묶어 쓰고, 덕분에 AVX-512 사용시에도 AVX2 대비 성능 향상은 없진 않지만 기대보다는 덜한 편이다.
재미있는 점은, 12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앨더 레이크(Alder Lake)’부터는 AVX-512 지원이 빠졌다는 점이다. 12세대 코어 프로세서부터는 두 개 유형의 코어를 함께 사용하는 ‘퍼포먼스 하이브리드’ 구성을 사용하는데, 이 때 사용하는 ‘쓰레드 디렉터’의 복잡성 때문에 AVX-512 지원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퍼포먼스 코어에는 설계상 AVX-512 지원이 가능하지만, 에피션트 코어는 태생적으로 AVX2까지만 지원됐고, 쓰레드 디렉터가 코어 유형간 상이한 명령어 지원으로 인한 복잡성 증가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코어 울트라’도 AVX-512 지원이 빠져 있지만 향후 2025년 이후 선보일 제품에서는 AVX-512 지원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분위기인 지금의 전환기
사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코어 울트라’가 모바일 플랫폼에서 먼저 선보이고 데스크톱에서는 기존 ‘랩터 레이크’의 리프레시가 사용된 이유가 예전의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동작 속도’다. ‘인텔 7’ 공정 기반 ‘랩터 레이크’의 최대 동작 속도는 6GHz에 달했지만, 새로운 ‘메테오 레이크’의 최대 동작 속도는 5GHz 초반에 그쳤다. 같은 동작 속도에서 10% 이상 성능 향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메테오 레이크’ 기반 데스크톱 프로세서가 나와도 기존의 ‘랩터 레이크’를 넘지 못하는 상황도 충분히 올 수 있다.
덕분에, 또 한번 모바일과 데스크톱 프로세서 제품 간의 공정과 아키텍처가 전혀 다른 상황이 등장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은 각 제품간 격차가 커 보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14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13세대의 리프레시로 나오면서 기존의 메인보드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는데, 다음 세대에서 풀체인지를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같은 제품을 다른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 수고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사실 12, 13세대를 쓰고 있던 사용자 입장에서는 조금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공정이나 아키텍처 같은 기술적 특징보다, 새로운 기술적 특징이 가져다 주는 ‘결과’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파격적인 기술적 특이점이 있다해도, 이 특이점이 사용자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도가 커지는 ‘미세 공정’ 또한, 언제나 새로운 미세 공정으로의 전환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미세공정의 표현 또한 상대적, 자의적이라 명칭만으로 직접 비교할 수도 없다. 결국 공정 선택은 제조사의 전략적 선택이고, 시장의 평가 대상은 기술이 가져오는 ‘결과’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