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IT] 정책 실기(失期)가 가계부채 화 키운다
“‘부채주도’ 성장을 버리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넘쳐나는 유동성이 부동산, 주식 등 투자 시장으로 흘러간다. 자본이 몰린 시장은 ‘버블’을 일으키고 이 버블은 성장으로 치환된다. 집값이 높아지고 가계 소비도 늘어나며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는 내수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 저금리 시대였을 때다. 가계에서 부채를 부담할 수 있어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부채주도 성장의 로직이 작동할 때 가능한 얘기다.
과거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이랬다. 부채주도 성장은 금융위기 등 불운한 대외 이슈가 없는 한 실패한 적이 없다.
부동산 경기 부양이 절실한 현 정부도 결국 불패(不敗) 전략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모순적인 태도로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차지하고 정책 시행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책 ‘실기(失期)’가 가져오는 후폭풍은 너무나 크다. IMF 경제위기가 그랬다. 당시 정부가 외환 정책, 금융 정책, 위기관리 정책을 제때 펼치지 못하면서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암흑기를 경험했다.
7월로 예정됐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적용을 돌연 두 달 뒤로 미룬 정부의 결정이 질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DSR은 연소득에서 차지하는 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이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만큼, 가계부채 안정에 기여할 거라 기대됐지만, 시장 연착륙이 먼저라는 정부 방침에 시행이 늦춰졌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와 가계부채 수준을 봤을 때 '빚을 더 내라'는 시그널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달 20일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07조6362억원으로 한 달도 안돼 5조원 가까이 늘었다. 기간을 3개월로 늘려 잡으면 15조원이나 된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이자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정부에서 준비 중인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먼저 내놓은 뒤 종합적인 가계부채 억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 산토끼도 잡고, 집토끼도 잡겠다는 심산인데, 뜻대로 되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시장이 떠안아야 한다.
스트레스 DSR 단계적 적용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바다. 지난 2월 1단계 조치가 시행됐다. 대출자의 이자부담 가중이 새로운 이슈가 아니란 뜻이다. 지금까지 종합 정책을 만들지 못했단 것은 이미 정책 실기를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자영업자 걱정은 부채주도 성장을 놓지 못한 정책결정자들의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