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떠나는 인텔, 당분간 위기관리 ‘공동 경영’ 체제

공정·아키텍처 개선 ‘4년간 5개 노드 전환’ 계획, 내년 ‘인텔 18A’ 양산 목전 제온 6·가우디 3·코어 울트라로 AI 시대 경쟁력 높여 시장 분위기 전환 기대 글로벌 인력 감축 등 비용 절감 자구책에도 이사회와 마찰 은퇴 이유 거론

2024-12-03     권용만 기자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CEO가 40여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당분간은 데이비드 진스너(David Jinsner)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타우스(Michelle Johnston Holthaus)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 총괄 수석 부사장이 인텔을 이끌 예정이다.

팻 겔싱어 전 CEO는 1979년 인텔에 입사해 인텔의 80486 프로세서 설계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텔 최초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2009년 인텔을 떠나 VM웨어(VMware)의 CEO와 EM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역임하고 2021년 2월에 인텔에 CEO로 복귀했다. 

컴퓨텍스 2024서 기조연설에 나섰던 팻 겔싱어 인텔 전 CEO / 권용만 기자

인텔은 2일(현지시각) 팻 겔싱어 CEO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12월 1일자로 팻 겔싱어 CEO는 인텔의 CEO 직과 이사회 임원 직 모두에서 사임했다. 일반적으로는 CEO에서 물러나더라도 이사회 임원 직은 일정 기간 유지하는 모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인 모습이다. 외부에서 이번 은퇴와 사임을 ‘경질’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텔은 이에 대해, 새로운 CEO를 선임할 때까지 데이비드 진스너(David Jinsner)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타우스(Michelle Johnston Holthaus)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 총괄 수석 부사장이 CEO 직을 공동 수행할 것이라 밝혔다. 인텔의 독립적 이사회 의장인 프랭크 예리(Frank Yeary)가 임시 회장직을 맡는다.

미셸 존스턴 홀타우스 부사장은 새로운 ‘인텔 제품군(Intel Products)’ 그룹의 CEO 직을 수행할 것으로 발표됐다. 이 ‘인텔 제품군’ 그룹은 기존의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 데이터센터와 CI 그룹, 네트워크와 엣지 그룹을 포함해 구성됐다. 인텔 파운더리의 리더십 구조는 변화가 없다.

팻 겔싱어 전 인텔 CEO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인텔을 이끈 것은 일생의 영광이었다”며 “올해는 대단히 도전적인 해였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인텔에 어렵지만 필요한 결정을 해 왔다. 인텔의 일원으로 함께 일했던 전 세계의 많은 동료들에 영원히 감사한다”고 말했다.

프랭크 예리 의장은 “이사회를 대표해 팻 겔싱어 전 CEO의 지금까지의 헌신에 감사를 표한다. 팻 겔싱어 CEO는 인텔에 있어 중요한 순간에 복귀해 회사 전체의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에 제조 경쟁력을 회복하고 세계적 수준의 파운드리 역량을 갖추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고 투자자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 18A 공정으로 만들어진 웨이퍼 / 인텔

팻 겔싱어 전 CEO는 지난 2021년 2월 취임과 함께 인텔이 직면한 다양한 위기들을 해결해 왔다. 당시 14나노미터(nm) 공정에서 지체되고 있던 공정 전환과 아키텍처 전환을 위해 ‘인텔 7’에서부터 시작하는 ‘4년간 5개 노드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25년 ‘인텔 18A’의 양산으로 완성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텔 7’은 클라이언트용 ‘엘더 레이크’와 ‘랩터 레이크’, 엔터프라이즈용 ‘사파이어 래피즈’에 활용됐다. ‘인텔 4’는 클라이언트용 ‘메테오 레이크’, ‘인텔 3’은 엔터프라이즈용 ‘그래나이트 래피즈’와 ‘시에라 포레스트’에 활용됐다. 하지만 ‘인텔 20A’ 공정은 현재 인텔의 제품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인텔 20A를 활용할 예정이었던 ‘애로우 레이크’는 TSMC의 N3B 공정 등을 활용해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4년간 5개 노드 전환’ 계획의 마지막인 ‘인텔 18A’는 인텔의 차세대 제품과 파운드리 서비스 양 쪽에서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이 공정으로는 차세대 클라이언트용 ‘팬저 레이크’와 엔터프라이즈용 ‘클리어워터 포레스트’ 등이 생산 예정이다. 미국 국방부와의 ‘시큐어 인클레이브’나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도 ‘인텔 18A’ 공정을 사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빠른 제조 공정 전환이 부담으로도 작용한 모양새다. 인텔은 18A 공정 이후 14A 등 차세대 공정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18A까지의 과정에서 투자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18A 이후는 ‘통상적 수준’의 투자로 돌아가면서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인텔 파운드리는 최근 몇 분기간 지속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해 왔는데 이 또한 수요 대비 큰 투자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한편 인텔은 미국 상무부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에 따른 최대 11조원 가량의 직접 자금 지원도 최근 확정했다. 

제품 측면에서는 최근의 AI 시대 움직임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는 평이다. 특히 GPU 제품에서의 지연 등이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제온 6’ 제품군이나 ‘가우디 3’ 가속기 등의 신제품들은 이전보다 높은 경쟁력으로 시장 분위기 전환이 기대되기도 했다. PC 시장에서는 12세대 코어 프로세서 ‘엘더 레이크’ 이후 시장 주도권을 다시 찾아왔고 ‘코어 울트라’ 제품군으로 AI PC 시장으로의 전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편, 팻 겔싱어 전 CEO의 은퇴 이유 중 하나로는 이사회와의 마찰도 꼽힌다. 인텔은 비용 절감을 위한 강력한 자구책도 시행해 올해 말까지 글로벌 임직원 규모를 1만5000명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파운드리 사업에서의 실적 문제 등과 함께 주가 또한 연초 대비 60%까지 떨어진 바 있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