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출총량 넘었는데'… 금리 내리라 압박에 죽을 맛인 시중은행

2024-12-05     김경아 기자

시중은행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까지 인하한 상황. 여기에 정치권도 대출 문턱을 낮추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출금리 하락을 기대한 금융 소비자들이 은행 문을 두드리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근 채 버티고 있다. 이는 당국이 가계대출 축소를 압박함에 따라 은행권이 너나 할 것 없이 대출 총량 관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 2024년 연간 가계대출 실적. NH농협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은행들이 늘어난 목표치를 상회하는 대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 그래픽=김경아 기자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계대출 잔액은 733조338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조2576억원 증가한 수치지만, 두 달째 1조원대로 일단 증가세는 둔화하기는 했다. 

이런 상황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까지 인하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은행권 대출금리 하단이 3%대에 진입하면서 대출이 다시 불어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정치권도 대출금리를 내리라 압박에 나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말 “과도하게 큰 예대마진과 그로 인한 가계·기업 부담을 감안할 때 대출금리 인하는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내부 임원 회의에서 “예대금리차 확대로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희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보기에 금리 인하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서며 이른바 ‘대출 절벽’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지난 8월 이미 연간 대출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전년 잔액보다 늘어난 대출 증가목표치를 넘겨 대출을 해준 것.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작년보다 2000억원 정도 늘어난 수준으로 대출목표를 설정했지만 이미 4배 가까운 금액을 더내줬다. 그나마 아직 NH농협은행 정도만 1조원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대출 공급 목표를 초과한 은행들은 내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목표치가 줄어드는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에 은행권은 연간 가계대출 공급 목표치 관리를 위해 대출 상품 출시를 미루는가 하면,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고육책을 내고 있다.

실제 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은 비대면 가계대출 상품 판매를 한시 중단하기도 했다. BNK경남은행과 광주은행, iM뱅크 등 지방은행은 ‘풍선효과’로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전면 중단했다.

은행권은 아쉬운 대로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대출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에 연동하고, 여기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뺀 만큼의 이자율로 계산된다. 

은행들인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자칫 건드렸다가 특정 은행으로 대출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지난 9월, KB국민·신한·우리은행은 지난 10월을 마지막으로 가산금리 또는 우대금리를 조정하지 않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시장 상황에 맞춰 대출금리를 낮추자니 대출 총량 규제에 걸리고, 그렇다고 버티자니 쏟아질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연초가 되더라도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대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에서다.

대출이 연초에 급증하고 연말에 급락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은행으로부터 월별·분기별 대출 취급 계획을 제출받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 될 전망이다.

결국 은행권이 실수요자를 가려낼 수 있는 세밀한 대출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한계다. 

하준영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준금리가 인하했지만, (대출금리 인하 등) 돌아오는 혜택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며 “단순히 은행이 대출을 막기만 하는 것은 너무 손쉽게 대응하는 방식인 만큼, 대출 심사 기능을 잘 활용해 실수요자나 우량 차주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