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포 대신 묵념… 금융신년인사회, '시장 안정 최우선' 한 목소리
尹 복심 이복현 금감원장도 헌법재판관 임명 지지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범금융권 인사들이 대내외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으기 위한 각오를 다졌다. 모처럼 만난 금융사 수장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모습이었다. 정부와 금융당국, 금융회사 수장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치적 불안에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등의 영향으로 얼어붙은 금융 시장을 타개하기 위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3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5 범금융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5대 금융권 대표들을 비롯해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금융권별 협회, 범금융권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국내 금융권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해 각오를 다지고 한 해 동안 금융권에서 추진해야 할 주요 과제와 방향성을 공유하는 자리다. 통상 7~800여명이 모이는 자리인데 올해는 금융권 안팎으로 벌어진 사건 사고 영향으로 참석자가 줄었다.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리본 핀을 달기도 했다.
행사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 묵념으로 시작됐다. 신년의 희망을 알리는 축포와 공연, 세레머니는 생략됐다.
이날 참석할지 관심을 모았던 최상목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가결로 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은 특수한 상황에서 현안에 더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다.
4대 금융지주 회장은 말을 아꼈다. 이들 중 먼저 현장에 도착한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경영 전략에 대해 묻는 질문에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임종룡 회장은 “잘 해나가겠다”는 짧은 답을 남겼다. 지난해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뒤 내부통제 강화와 조직문화 개선 등을 약속한 만큼 이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역시 말을 아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함 회장과 계열사 사장들이 차례로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 긴 행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경영 전략과 연임 도전을 묻는 질문엔 웃음으로 답했다.
농협금융그룹은 이재호 직무대행이 참석했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말 이석준 회장 임기 만료 이후 이재호 농협금융지주 부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차기 회장 후보자인 이찬우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오는 2월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받은 뒤 취임할 예정이다.
4대 금융 신임 은행장들도 모두 자리했다. 연임에 성공한 정상혁 신한은행장을 비롯해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모두 자리해 인사를 나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리스크 관리와 민생 지원을 당부하면서 금융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최 권한대행은 축사를 통해 “국내 정치 상황, 미국 신정부의 정책 기조 전환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되고 금융 시장의 변동성도 커진 모습”이라며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대응해서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우리 경제·금융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융권도 충당금 확충 등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결정하는 등 시장 상황에 차분하게 대응해달라”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시행해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들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인들을 향해 “자체적 건전성·유동성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서민·소상공인·기업 자금 공급과 경영 계획 등을 일정에 따라 흔들림 없이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창용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해 “전례 없는 정치·경제 불확실성 아래 물가·성장·환율·가계부채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을 고려해 유연하고 기민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며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이날에도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 결정에 대한 지지 뜻을 밝혔다. 그는 “최 권한대행께서 대외 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최 권한대행 결정을 지지한다는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원장은 “이창용 한은 총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금감원도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경제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이끌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원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권엔 “대내외 환경의 급변에도 우리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실 흡수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위기 대응 역량 강화에 신경 써달라”며 “올해 민생경제 지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해서도 적극적 노력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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