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유통가 민간외교 주목… 대미창구 기대감↑ [트럼프 취임]
'트럼프 2기' 집권이 본격화한 가운데 국내 유통업계의 민간 외교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정치 외교가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주요 기업의 총수들의 행보가 바빠졌다. 일부 기업에서는 트럼프와의 친분을 앞세워 일찌감치 미국 사업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유통업계 주요 수장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DC에 입성했다. 대표적으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트럼프 일가와의 친분을 드러내 주목 받았다. 이들은 취임식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참석하는 무도회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화제가 됐다.
신세계그룹과 쿠팡 외에도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패션그룹형지의 최준호 부회장도 트럼프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지난 17~19일 사이 워싱턴DC에 도착했다. 8년 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유통업계 수장들의 움직임이 적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2018년 PK리테일홀딩스를 설립하고 미국내 유통사업을 운영 중이다. PK리테일홀딩스는 현지 슈퍼마켓 체인인 굿푸드홀딩스를 인수해 5개 그로서리(식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또 이마트는 미국 오리건주에 가정간편식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캘리포니아주 와이너리 셰이퍼 빈야드를 인수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범석 의장의 쿠팡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인만큼 이번 트럼프 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 의장은 지난 비공개 리셉션을 찾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차기 내각 인사들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식품 분야에서는 SPC그룹이 독보적으로 미국 사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텍사스주에 제빵공장 설립 계획을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넘어 중남미 시장까지 아우르는 생산거점 역할을 하는 공장으로 투자금액만 23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가 현지 투자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만큼 향후 SPC그룹의 시장 개척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패션그룹형지를 이끄는 최준호 부회장도 까스텔바작 대표 자격으로 취임식에 참석했다. 패션업계에선 유일하다. 최 부회장은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한 후 21일 글로벌 패션 전시회 ‘텍스월드 USA 2025’를 참관한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취임식을 계기로 미국과 소통 창구를 확보, 더 긴밀히 교류하면서 글로벌 진출 보폭을 넓혀갈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통업계 수장들이 트럼프 취임식을 눈여겨 보는 건 미국 시장이 글로벌 시장의 종착지로 꼽히면서다. 지난해 국내 유통업계는 식품업계를 제외하고는 경기 위축과 고물가로 대부분 실적이 악화됐다. 내수 부진 상황 속에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에 10%의 추가 관세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다만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식품과 패션·뷰티 등 ‘K유통’이 인기를 끌고 있어 향후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가 뚜렷해 기업들의 미국 직접투자 행보와 인적 네트워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미 창구가 단절된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경제 소통은 미국과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상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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