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IT] 요동치는 가상자산 시장, 금융당국은 어디에?
‘크립토 대통령’을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이 유례없는 혼돈에 휩싸이고 있다.
하루 사이 30%이상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격 변동은 일상이 됐다. 예측할 수 없는 시장상황에서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입’만 바라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
그사이 별다른 가치도 없는 디지털 기념품쯤으로 여겨졌던 '밈코인'까지 뜨면서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자신의 밈코인이라며 ‘오피셜 트럼프’를 만들고 나선 상황이라 교통정리는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아수라장이다. 대표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온갖 이벤트를 벌이며 고객 유치에 혈안이 됐다. 그 와중에 검증되지 않은 밈코인을 앞다퉈 상장시키며 수수료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거래소 탓만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다. 국내에 가상자산 거래소가 생긴지 10년이 지났지만, 자리잡지 않은 규제에 거래소들은 아직도 수수료에만 오롯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지난해 마무리 됐어야 할 사업자 갱신은 해를 넘기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업비트는 지난해 10월 사업자 라이선스 만료기한이 도래했지만, 금융당국은 영문도 알려주지 않은 채 수리를 미루고 있다.
법인 계좌 개설 논의도 지연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15일 제2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2단계 입법을 논의했으나, 법인의 실명계좌 허용 여부는 안건에서 제외됐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의 비트코인 전략자산화에 대응해 법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 이어 홍콩, 캐나다, 스위스 역시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를 운영하며 기관투자자들을 유치했다. 이에 반해 법인계좌 승인조차 감감무소식인 한국 시장은 아직도 소매투자자들에만 의존하는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국내 거래소 입지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때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1위 거래소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던 빗썸은 지금은 국내에서는 업비트에 밀리고, 글로벌에서도 20위권으로 내려 앉았다. 국내 1위 업비트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최고의 가상자산 사업자’ 평가에서 전년도 4위에서 올해 7위로 하락하며 경쟁력 약화가 현실로 드러났다.
정상적인 사업 확장이 어려운 국내 거래소들은 무분별한 신규 코인 상장으로 연명하는 구조에 빠졌다. 신규 서비스 개발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고 이다.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규제가 시장의 성장만 막고 있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할 거래소들은 단기적 이익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방치된 규제와 미뤄진 입법 논의 속에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성장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인 제도 정비가 더는 늦춰져선 안 된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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