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급등에 자본비율 사수 비상… 기준치 턱걸이 [2024 금융실적 ①]
CET1 비율, KB·신한·하나 줄줄이 하락…우리만 유일하게 상승
'이자장사 논란과 상생금융'. 지난해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은 이같은 수식어를 항상 달고 다녔다. '혁신이 없는 역대급 실적'이라는 조롱과 이를 만회하기 위한 금융지주의 안간힘이 빚어낸 결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금융지주들이 이달 일제히 지난해 실적을 쏟아 냈다. 실적에 나온 수치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4대 금융그룹이 환율 급등(원화약세)에도 불구, 양호한 자본비율을 유지했다. 통상 환율이 예상치 수준을 넘어서면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하면서 보통주자본비율(CET1) 방어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대출 자산 축소와 함께 우량 자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운영한 결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전언이다. 특히 우리금융의 경우,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를 반영하고도 기준치를 웃돌면서 보험사 인수에 따른 자본비율 하락 우려를 씻어냈다.
고환율에도 자본 비율 지켜낸 금융지주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각각 13.51%, 13.03%, 13.13% 기록했다. 환율 상승으로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해 비율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국의 권고치인 13%대를 유지했다. 통상적으로 CET1 비율이 13%를 넘으면 주주환원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KB금융은 지난 2023년 13.59%와 비교해 0.08%포인트 하락했지만 4대 금융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KB금융이 좀 더 적극적으로 CET1 비율을 관리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회사측은 안정적인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상록 KB금융 CFO는 지난 5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보통주자본비율은 4분기 환율영향을 크게 받았고 4분기 현금배당과 1000억원 이상 자사주 매입 등이 적용됐다”며 “내부적으로 자본비율 관리를 위해 3, 4분기 자산성장을 감소로 바꿔갈 수 있다고는 봤지만, 변동폭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끌고가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도말에 자본비율을 무리하게 해서 끌어올리게 되면 하반기 들어서 주주환원 부담도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한금융은 13% 대를 간신히 수성했다. 작년 13.17%에서 0.14%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위험가중자산(RWA)이 5조8000억원 증가하며 CET1 비율을 0.22%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신한금융 측의 설명이다.
CET1 비율의 추가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신한금융은 연간 RWA 성장률을 5% 내외로 제한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에 따른 KPI(핵심성과지표) 반영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룹사별로 RWA 목표 초과분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나금융 사정도 비슷하다. 13%대를 유지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전년 13.22%보다 0.09%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환율 상승효과가 0.93%포인트 낮춘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금융, 금감원 검사 악재에도 비율 개선
이에 반해 우리금융은 지난해 연말 기준 12.08%로 전년 11.99%보다 0.09%포인트 개선됐다. 4대 금융 가운데 CET1 비율이 개선된 곳은 우리금융이 유일하다. 환율 상승 영향으로 40bp(1bp=0.01%포인트) 감소 영향에도 RWA 관리에 집중한 결과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지난 4일 금감원은 우리금융지주‧은행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동산 신탁 등 계열사의 숨겨진 부실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보통주자본비율이 최대 20bp 하락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우리금융은 이를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반영했지만 자본비율 개선에 성공했다.
CET1 비율이 금융당국 권고치인 12%를 넘어서면서 보험사 인수 이후 자본비율 악화 우려도 씻어냈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동양‧ALB생명보험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금융당국에 인수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CET1 현황은 경영실태평가에 반영되는 만큼, 인수를 확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성욱 우리금융 최고재무책임자(부사장)는 7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책임준공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위험자산은 대부분 지난해 9월 말, 12월 말 자본비율 산출에 반영했다”면서 “향후 추가하락 요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 인수에 성공하면 은행 의존도는 90%대에서 80%로 낮아져 수익 포트폴리오가 개선되고 기업가치가 제고될 것”이라며 “위험가중치는 250% 적용하고 염가매수차익으로 상쇄되면 자본비율 차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