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도 대형사 싹쓸이…까치밥으로 연명하는 중소형사 [증권업계 양극화 ③]
대형사 10곳 IPO 3.2조, 유상증자 3.4조 주관… 80% 넘어 중소형사 주관 비중은 IPO 6%, 유상증자 14%, 회사채 21%
기업금융(IB) 시장은 대형사 차지다. 대형사 10곳이 기업공개(IPO)·유상증자 주관을 거의 독점했고 중소형사는 코스닥 업체 위주로 주관하는 데 그쳤다. 시장 둔화 속 기업들이 트랙 레코드(실적)를 갖춘 대형사를 선호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소형사도 나름 IB 하우스를 갖추고는 있지만 거의 개점휴업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들이 주관한 IPO·유상증자 규모는 총 7조8336억원(148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 11조7713억원(188건)에 비해 33.5% 감소했다. 종류별로 보면 IPO가 3조5781억원에서 3조8875억원으로 8.6% 늘었으나 유상증자는 전년(8조1932억원)보다 51.8% 감소한 3조9460억원에 그쳤다.
IB 시장 위축에도 불구, 대형사 쏠림은 여전했다. 지난해 IPO 주관금액 중 메리츠증권을 제외한 대형사 9곳의 주관금액은 3조1569억원(76건)으로 전체 81.2%를 차지했다. 더본코리아 상장 등을 공동주관한 한국투자증권이 632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일전기 등을 단독주관한 미래에셋증권(5831억원)이 뒤를 이었다.
반면 중소형사에서는 신영증권과 IBK투자증권, DB금융투자, 한화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이 IPO를 주관했는데 모두 합쳐도 2217억원(9건)에 그쳐 1위 한투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모두 코스닥 주관이었다.
유상증자 격차는 더 컸다. 대형사 8곳(메리츠증권·하나증권 제외)은 지난해 총 3조3877억원을 주관했다. 전체 85.9%를 차지하는 규모다. LG디스플레이 유상증자를 공동주관한 한투와 KB증권, 대신증권, NH투자증권이 나란히 1~4위를 차지했다.
중소형사(SK·LS·iM·유진·상상인·한양·BNK·현대차) 중에서는 SK증권(2281억원)이 삼성제약 등의 주관에 나서며 분전했으나 전체 규모는 5580억원(비중 14.1%)에 그쳤다. 시장별로는 코스피 813억원(3건), 코스닥 4771억원(34건)으로 적수가 되지 못했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중소형사 존재감은 미미했다. 전체 국내 증권사(27곳)는 지난해 81조9811억원 규모의 회사채(일반회사채 기준)를 주관했는데 거기서 대형사 10곳은 비중이 78.7%(64조4891억원)에 달했다. 2023년 68.1%(42조2492억원)에서 1년 새 1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중소형사 회사채 주관금액은 19조1193억원에서 17조4920억원으로 8.5% 감소했다.
증권사 주관 양극화는 얼어붙은 시장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오랜 기간 네트워크를 쌓고 인수 여력이 커 흥행을 이끌 수 있는 대형사를 선호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상장 문턱을 높여 상장 철회 사례가 늘어난 점도 트랙 레코드를 갖춘 대형사에 대한 수요를 키웠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형 증권사가 상장을 주관하면 가격·흥행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 대형사를 선호하고 있다”며 “트랙 레코드가 탄탄한 대형사를 주관사로 선정하면 기관 투자자 모집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큰 것 같다. 주관 영업은 1~2년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중소형사로서는 이겨내기 힘든 영역이다”고 말했다.
주관 양극화에 IB 수수료 수익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형사 10곳의 IB 관련 수수료(매수및합병수수료·채무보증관련수수료) 수익은 총 1조7171억원으로 전년(1조5405억원) 대비 11.5% 늘어난 반면, 나머지 중소형사의 IB 관련 수수료 수익은 5879억원에서 4146억원으로 29.5% 줄어들었다. IB 관련 수수료 수익(2조3350억원)이 증권사 수수료 수익 (12조8826억원)의 20% 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비중이다.
중소형사 IB 주관 개선을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는 게 낫다는 게 업계 전문가의 조언이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중소형사는 모든 산업을 커버하는데 외국 IB는 그렇지 않다. 바이오 등 고성장 산업 중 일부 산업만 주관한다”며 “업종을 가리지 않고 주관하는 대형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특정 산업 중심으로 강점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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