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사외이사 억대 연봉 불구 거수기 여전… 반대표는 단 '1표'

삼성생명·화재 사외이사 연봉 1억400만원 현대해상 사외이사, 단 한 차례 반대 의견

2025-03-11     전대현 기자

주요 보험사 사외이사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전체 이사회 안건에 반대한 표결은 단 한 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보험사 사외이사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전체 이사회 안건에 반대한 표결은 단 한 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 DALL-E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하면서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거수기(본인 주장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손을 드는 사람)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는 신의 직장?… 연간 20시간 회의하고 억대 연봉

11일 국내 보험사 10곳의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외이사가 챙겨간 보수는 최고 1억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연봉 최고액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다. 각각 1억400만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이어 ▲한화손해보험 8415만원 ▲한화생명 8400만원 ▲롯데손해보험 7780만원 ▲메리츠화재 7100만원 ▲미래에셋생명 6900만원 ▲교보생명 6600만원 ▲DB손해보험 6560만원 ▲현대해상 6500만원 등으로 집계됐다. 

사외이사들은 매달 기본급으로 400만~866만원가량을 받았다. 기본금이 400만원대인 보험사는 이사회에 참석하면 1회당 50만원을 추가 수당으로 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 1회 건감검진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곳들이 대다수였다.

주요 보험사 이사회 의결 안건 사항 / IT조선

삼성생명 사외이사 중에는 유일호 이사회 의장이 총 1억400만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수령했다. 유일호 의장의 지난해 전체 회의시간은 21시간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495만원이다. 

삼성화재 박진회 이사회 의장도 같은 금액인 1억400만원을 받았다. 이사회 및 이사회 내 위원회에 참석한 시간은 약 27.3시간으로 시간당 약 380만원을 벌어들였다.

한화손보 사외이사 4명은 모두  8415만원의 연봉을 동일하게 받았다. 평균 근무시간은 76시간이다. 시간당 110만원의 돈을 받은 셈이다. 

한화생명 이인실 사외이사는 지난해 총 8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총 근무시간은 378시간으로 타사 사외이사 대비 근무시간이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시급으로 따지면 22만원 수준이다. 

다만, 사외이사 활동시간을 업무 성실성 척도로 삼기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사회나 위원회 진행시간 외 사전 설명회, 안건 자체 검토시간 등을 포함하면 근무시간을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보험사 의결 안건 450건 전부 통과… 거수기 비판 여전

지난해 주요보험사 10곳이 이사회를 통해 상정한 의결 안건은 약 450건이다. 이들 이사회에선 경영계획·예산 결정부터 배당이나 채권 발행, 책무구조도 제출, 각종 내부규범 개정 등에 대한 안건이 상정됐는데 모두 찬성으로 가결됐다.

전체 보험사 의결안건 중 반대의견을 낸 사례는 단 한건에 불과했다. 근로 시간 대비 상당한 연봉을 받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유일하게 반대표를 낸 사람은 김태진 현대해상 사외이사다. 지난해 7월 개최된 제7차 이사회에서 주요업무집행책임자 선임의 건과 관련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주요업무집행책임자 후보자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 정경선 전무였다. 해당 직무는 회사의 전략기획, 재무관리, 위험관리 등 주요 업무를 집행하는 직책이다. 시장에서는 정경선 전무가 오너 3세 중에서도 경영참여가 늦었던 만큼 경영성과를 내는데 집중하기 위해 주요업무집행책임자로 추천했다고 봤다. 

그러나 김태진 사외이사는 주요업무집행책임자 선임과 관련해 향후 정기 기구개편시 신규 선임을 검토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해당 안건은 7명 6명이 찬성하면서 가결됐다. 

사외이사를 역임했던 고위 관계자는 "사외이사 후보군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이가 있는 인물로 선정돼야하지만, 통상 기업 경영철학에 맞는 사람을 선호하는 현상이 짙다"며 "특정업에 대한 깊이가 떨어지다보니 특별히 반대할 수 있는 역량을 못갖춘 경우도 많고, 본업으로 바쁜 경우가 많아 그만큼 시간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이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보다는 관출신이나 법조계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현상이 짙다는 것"이라며 "사외이사가 경영에 너무 깊게 관여하면 중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덧붙였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