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속 경쟁 ‘F1’, 어느 테크 기업과 함께 달릴까 [권용만의 긱랩]

상위 팀의 ‘챔피언십 경쟁’, 팀별 스폰서십 기업의 ‘대리전’ 양상 흥미

2025-03-12     권용만 기자

봄의 시작과 함께 각종 스포츠 리그가 새 시즌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팬층이 두터운 ‘F1(Formula 1)’ 또한 이번 주말 호주에서 한 해의 여정을 시작한다. 국내에서도 ‘쿠팡플레이’를 통해 생중계가 제공되는 만큼 많은 팬들이 낮과 밤이 뒤집히는 일정을 감수하면서 중계를 보는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F1’은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온로드 자동차 레이스 중 가장 수준 높은 역사와 전통의 리그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10개 팀에서 총 20명의 ‘선택받은’ 드라이버들이 각자의 팀을 대표해 경기에 나선다. 이 ‘F1’의 특징은 ‘공정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역설적인 룰에서 온다.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공정한 기회가 있지만 룰 안에서 어떤 식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당연히 기본 규정을 지키는 선에서 모든 팀의 자동차는 성능이 다르고, 규정 안에서 드라이버에 맞춰 성능을 내는 것도 능력이다.

올해의 F1은 지난해 마지막의 추세가 이어져 상위 팀으로 꼽히는 페라리와 맥라렌, 메르세데스와 레드불까지 4개 팀간 차열한 챔피언십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팀의 전략과 레이스를 보는 즐거움과 함께 이들 팀과 함께 하는 ‘스폰서’의 대리전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의외로 이 상위 팀들의 스폰서 중에는 제법 IT 관련 기업들이 많다. 실제 이들 스폰서 계약도 팀간 라이벌 관계와 관련 있는 듯 한 모습이다. 팀 성적이 좋아도 나빠도 스폰서의 이미지로 이어질 수 있다.

레노버는 F1에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 레노버

리그 전체에 참여하는 레노버와 AWS

F1 리그에 참여하는 기업 중 IT 관련으로 잘 알려진 기업으로는 레노버(Lenovo)와 아마존웹서비스(AWS), 세일즈포스(SalesForce) 정도가 있다. 이 중 ‘레노버’는 지금까지 여러 팀에 스폰서로 참여하던 것을 넘어 2025 시즌에는 ‘글로벌 파트너’로 승격했다. 이 계약의 일환으로 레노버 그룹의 자회사 ‘모토로라(Motorola)’가 F1의 글로벌 스마트폰 파트너로 활동한다. 레노버는 2022년 이후 현장의 IT 시스템을 지원하고, 시즌 레이스 중 두 번에 타이틀 스폰서를 맡을 계획이다.

레노버는 현재 세대의 워크스테이션 제품을 발표할 때 애스턴 마틴과의 디자인 관련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었는데, 의외로 이 협력이 F1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모습이다. 레노버는 팀 단위의 스폰서로는 2007년과 2008년에 윌리엄즈(Williams)에, 2018년과 2019년에 페라리에 참여한 바 있다. 의외로 애스턴 마틴 팀 발족 이후의 스폰서 참여 기록은 없다. 

AWS 또한 F1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글로벌 파트너다. 이미 2018년부터 F1 중계에는 AWS의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예측 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개별 드라이버가 앞서 달리는 드라이버를 언제 따라잡을 수 있는지 예상하는 것부터, 팀들이 언제 타이어 교체에 들어갈 것인지 등을 실시간으로 예측해 보여주는데 최근 몇 시즌간은 정확도가 올라가 제법 잘 맞는다. 이는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는 F1의 레이스를 좀 더 전략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누가 예상을 벗어난 ‘도박수’를 던지는지도 쉽게 알려준다.

HP는 페라리의 리버리 스폰서로 함께 달리고 있다. / HP

팀간 경쟁에 함께 부각되는 스폰서 경쟁

F1이 워낙 ‘속도’에서는 상징적인 존재인 만큼 ‘성능’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IT 기업들도 이 F1의 스폰서로 제법 참여하고 있다. IT 기업들이 F1에 스폰서십으로 참여하는 이유로는 이제 IT가 일상을 위한 ‘필수’가 됐고, 자동차와 레이싱에서도 IT 기술의 활용이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일부 팀에서는 전통적인 자동차 관련 기업이 아닌 IT 기업이 ‘메인 스폰서’급 지위로 참가하기도 하며 의외로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프리시즌 테스트 결과에서 가장 기대되는 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은 언제나 레이싱에 진심인 ‘페라리(Ferrari)’다. 페라리의 경우 지금까지 팀 이름을 스폰서 이름에 양보하지 않긴 했지만 차량 리버리와 로고에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양보하고 있다. 올해 페라리의 리버리 스폰서는 ‘HP’로, 계약 금액은 현재 리그에서 가장 큰 규모인 연 1억달러(약 1459억원)가량으로 알려졌으며 차량의 리어 윙 등에 대형 로고가 들어갔다. 이 외에도 AWS나 팔란티어(Palantir), IBM 등이 들어갔다. ‘하만카돈’과 ‘뱅앤올룹슨(B&O)’이 모두 들어간 것도 이채롭다.

HP 또한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관련에 의외로 오랫동안 관심을 보여 온 기업이다. F1에서는 2000년대 재규어나 2010년 르노, 2000년도 초반 윌리엄즈 등과 스폰서십을 맺은 바 있다. 현재 HP의 ‘Z 워크스테이션’ 라인업의 시작은 2010년 초반 워크스테이션 제품군 ‘Z800/600/400’ 시리즈 제품군의 설계에 BMW와 함께 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즉, HP Z 워크스테이션의 ‘Z’는 BMW ‘Z’와 어느 정도는 이어져 있는 관계다. 

올해 또 다른 ‘챔피언 경쟁자’로 꼽히는 팀은 지난해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성능이 올라온 ‘맥라렌(McLaren)’이다. 맥라렌의 리버리 스폰서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OKX와 구글 크롬, 마스터카드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구글 크롬의 경우는 차체의 리버리 뿐만 아니라 차량의 휠에 색상을 칠해 리버리로 활용하는 것이 독특하다. 이 외에도 스폰서에는 델 테크놀로지스와 시스코, 드롭박스, 이베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 맥라렌의 드라이버 ‘오스카 피아스트리(Oscar Piastri)’는 시스코의 연례 행사 연단에도 오른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따라갈 수 없는’ 위용을 보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다소 기세가 덜한 ‘레드불 레이싱(Red Bull Racing)’은 현재 F1 참가 팀 중 가장 독특한 개성을 가진 팀이다. 이 팀의 현재 이름은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으로, 네이밍 스폰서에 ‘오라클(Oracle)’이 참여하고 있다. 딜 규모는 HP와 마찬가지로 연 1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하지만 의외로 오라클을 제외하면 레드불 레이싱의 스폰서 중 IT 기업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시트릭스와 HPE는 2023년까지만, 줌은 2024년까지만 참여했다. 지금은 1password와 AT&T 정도가 참여한다.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의 2024년형 머신 ‘W15’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챔피언십 경쟁의 또 다른 상위권 팀은 2010년대의 제왕 메르세데스-AMG(Mercedes-AMG)’다. 2022년부터는 차량 개발 콘셉트나 성능에서 다소 아쉬운 시기를 보냈지만 다시금 경쟁력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팀의 스폰서 중 눈에 띄는 기업으로는 AMD와 HPE, 퀄컴, SAP, 팀뷰어,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정도가 있다. 퀄컴과의 스폰서십 덕분에 지난해 하와이서 열린 스냅드래곤 서밋에서는 이 팀의 수장 ‘토토 울프(Toto Wolff)’가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업데이트 사태가 메르세데스의 기대보다 저조한 성적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중위권 팀으로 분류되는 ‘애스턴 마틴(Aston Martin)’에서는 ‘코그니전트(Cognizant)’와 넷앱(NetApp), 틱톡(TikTok), 센티넬원(SentinelOne), 서비스나우(ServiceNow), 코인베이스, 제록스 등이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이 중 코그니전트는 이전에는 이 팀의 네이밍 스폰서였지만 지금은 네이밍 스폰서에서는 빠진 상태다. 이 팀 또한 제법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애스턴 마틴 브랜드에서 이 팀이 가진 존재의 의의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팀의 드라이버 랜스 스트롤(Lance Stroll)은 브랜드의 회장 로렌스 스트롤(Lawrence Stroll)의 아들이다.

현재는 중하위권 정도로 분류되지만 나름 파워트레인까지 직접 만드는 팀이 ‘알핀(Alpine)’이다. 르노 그룹은 이 팀을 ‘르노’ 브랜드로 쓰다가 2021년부터 르노 산하의 ‘알핀’ 브랜드를 쓰기로 결정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팀의 스폰서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낸스 정도가 눈에 띈다. 최근 몇 년간 팀의 부진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탓은 아니겠지만, 타 팀에 스폰서십 계약을 한 경쟁 업체의 리버리를 단 차량에 추월당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속이 쓰릴 것이다.

올리버 호프만 아우디AG 기술개발 최고운영책임자(왼쪽), 마커스 듀스만 아우디AG CEO. / 아우디

2025 시즌, 치열한 경쟁 속 내년 ‘격변기’ 위한 준비 전략

올 시즌은 최근 몇 년간의 경쟁 중에서는 가장 치열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한 해 전체를 내년 준비에 투자하는 팀들도 제법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상위권 팀은 올 시즌 본격적인 타이틀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예년보다 상위 네 개 팀간 차량 성능 차이가 많이 좁혀져서, 어느 한 팀이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페라리는 역대 최다 횟수인 7회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을 과감히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반면 중하위권 팀은 올해보다 내년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F1은 내년 차량 규정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정돼 있다. 모든 팀이 이 규정에 따라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는데 올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보다는 내년에 새 출발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윌리엄즈와 자우버(Sauber)의 경우가 이런 전략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우버는 내년부터 ‘아우디’로 바뀔 예정이라, 이미 지난 시즌부터 모든 팀 리빌딩 전략이 2026 시즌을 향해 있다.

한편, 내년 시즌은 수 년만에 새로운 규정 적용에 따른 대격변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차량 규정이 크게 바뀜과 함께 새로운 팀으로 ‘아우디’와 ‘캐딜락’이 참전하기로 했다. 파워트레인 쪽에서도 레드불이 혼다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포드와 협력하기로 했고, 애스턴 마틴은 2026년부터 현재의 메르세데스 엔진 대신 혼다의 엔진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아우디는 등장과 함께 자체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선보이기도 했다.

차량의 변화만큼이나 사람의 이동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미 2025 시즌은 메르세데스에서 페라리로 이적한 루이스 해밀턴을 시작으로 많은 드라이버의 이동이 있었고, 여느 때보다 많은 신인 드라이버들이 등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레드불 머신의 공력 성능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애드리안 뉴이(Adrian Newey)’가 레드불을 떠나 애스턴 마틴에 합류하는 것이 공식화됐다. 애스턴 마틴의 F1에 대한 진정성과 함께 2026 시즌의 성과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