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위축' 쪼그라든 K영화·드라마, 中 열리면 숨통 트일까 [한한령 해제 ①]
중국 한한령 해제에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한령 해제가 실현됐을 경우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 게임, 음악 등 주요 K콘텐츠 산업에 어떤 영향이 끼쳐질 지 IT조선이 살펴봤다. [편집자주]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 그동안 중국 시장에 영상 콘텐츠를 제대로 수출하지 못했던 국내 방송·영상업계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제는 콘텐츠 장벽이 사라지기 전까지 국내 방송·영상업계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 방송영상 콘텐츠가 중국에 정식으로 수출될 경우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의 위기 원인으로 꼽히던 투자 위축과 자금 경색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 동안 중국 내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면 컨텐츠의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나 ‘더 글로리’ 같은 콘텐츠는 중국에서 불법으로 소비됐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오징어게임’ 시즌2은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인터넷 플랫폼 ‘더우반’에서 리뷰 6만개를 넘기도 했다.
업계는 이처럼 중국 내 K콘텐츠 수요가 확인되는 상황에 공식 수출 창구가 생긴다는 건 좋은 소식이라고 봤다. 콘텐츠 불법복제·유통도 정식 유통사가 직접 중국 내에서 대응할 수 있어 한국기업이 한국에서 대응하는 것보다 규모와 속도 면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한한령 해제로 중국 시장이 열리면 당장 수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신규 시장이 개척된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중국에선 이미 암암리에 한국 콘텐츠를 보고 있는데 중국 기업을 통해 정식 유통하게 되면 국내에서 중국에 항의하는 대신 중국 콘텐츠 유통사가 저작권 문제도 함께 다룰 수 있어 저작권 침해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방송영상업계에서는 한한령이 풀려 중국 시장 진출이 가능해지더라도 그전까지 살아남는 것을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넷플릭스·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가 아닌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작 환경과 투자 위축 때문이다.
국내 방송영상산업은 해마다 생존 위기를 넘기고 있다. 매년 비용은 증가하는데 수익이 줄고 있다. 2024 방송영상산업백서 조사 결과 2023년 국내 방송영상산업 규모는 25조4022억원으로 2022년 26조1047억원보다 2.7% 감소했다.
방송영상산업 중 위기가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영화다. 영화는 2024년 총관객수가 2023년보다 200만명쯤 감소했다. 지난해 총매출도 1조1945억원으로 2023년 1조2614억원보다 감소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총매출은 1조8000억원대였다. 지난해 총 개봉편수는 1344편으로 2023년 1410편보다 감소했다. 2019년 1740편과 비교하면 300편 넘게 줄었다.
CJ CGV가 국내에서 7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7년차 이상 대리급 직원 대상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CGV송파와 CGV연수역점 영업을 종료하게 된 배경도 영화산업이 어려워서다. 지난해 국내 개봉영화 중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건 ‘파묘’와 ‘범죄도시4’뿐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편으로 꼽힌다. 이마저도 제작비를 아껴 손익분기점을 낮춘 덕에 얻은 성과라는 평을 받는다.
방송업계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비용은 늘고 수익은 감소하는 형태가 영화와 같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 결과 국내 방송 제작비는 2020년 4조7835억원에서 2023년 5조6488억원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영상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을 최대 30%까지 확대했지만 수익을 내야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나라에서 30%쯤 공제받는 글로벌 OTT와 경쟁해야 할 국내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이 최대 15%라는 점도 개선 요소로 꼽힌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12일 영상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영화 시장이 극장 중심으로 무너지면서 CJ처럼 영화에 많이 투자하는 회사에서도 CJ CGV가 위기라는 말이 많아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유료방송 가입자 수와 방송광고 매출이 감소해 드라마 제작횟수는 줄고 대작 콘텐츠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흥행 실패 위험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