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한 푼 아쉬운데… 주주가치 훼손한 회사측 손들어 준 운용사들
"배당 못한다" 회사 주총 의안에 삼성·미래 등 대형 운용사 '찬성'
지난해 3월 대우건설 주주총회에서는 회사 주주인 운용사간 입장차가 엇갈렸다. 배당안건을 놓고 삼성자산운용은 '배당을 하지 않겠다'는 회사측 입장을 지지한 반면,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등은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대우건설은 5215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고도 15년 연속 무배당을 결정한 상태. 결국 회사 측은 의안을 가결시켰지만, 삼성자산운용은 시장 관계자들로부터, "주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대우건설 주가는 현재 1년 전보다 7% 가량 하락한 상태다.
이처럼 고객 돈을 받아 기업에 투자한 자산운용사가 주주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배당을 집행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별다른 이의없이 넘어가는 운용사도 적지 않았다.
17일 IT조선이 금융투자협회 ‘펀드별 의결권 행사 공시’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 45곳이 지난해 1~12월 펀드 편입 기업 의안 8307건(외국 기업 제외) 중 반대 주식수 비중은 5.4%에 불과했다. 찬성 의결 비중이 84.5%로 압도적이었고, 중립행사 의결 8.0%, 불행사 의결 2.1% 등의 순이었다.
운용사별로 보면 45곳 중 4곳을 제외한 41곳의 반대 비중이 10% 미만이었다. 삼성자산운용은 1347개 의안에 대해 4.5% 반대표를 던지는 데 그쳤다. 찬성 의결이 71.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립 의결도 24%로 높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669개 의안에 대해 행사한 반대 비중은 5.7%로 저조했다. KB자산운용은 8.9%,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4%, 신한자산운용 5.9%에 그쳤다. 한화자산운용(1.0%)과 키움투자자산운용(1.2%)은 1%대에 불과했다.
아예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운용사도 15개에 달했다. 하나자산운용은 삼성전자 등의 61개 의안에 대해 모두 찬성을 던졌다. 웰컴자산운용도 에코프로 등의 66개 의안과 관련해 모두 찬성 의결을 행사했다. 브레인자산운용·브이아이피자산운용·유경피에스지자산운용·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칸서스자산운용·타임폴리오자산운용·파이만자산운용·현대자산운용 등도 찬성 의결 100%였다.
문제는 주주입장에서 볼 때 마땅히 반대할 법한데도 회사 측 입장에서 표결이 이뤄진 경우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작년 3월 자사 펀드에서 운용 중인 신성이엔지 ‘결산및배당’ 의안에 대해 찬성표로 던졌다. 직전년도 366억원의 별도 순이익을 거두고 2011년 이후 한 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아 반대 의결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신성이엔지의 1년 주가 등락률은 –51.1%다.
1년간 주가가 20% 가까이 빠진 LG에너지솔루션 ‘결산및배당’에 대해서도 삼성자산운용 등 18개 자산운용사는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1조2372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으나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펀드 주주로서는 주가와 배당 모두 손해를 봤다.
이같은 소극적 의결 행사에 '자산운용사가 선관주의 의무를 저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주의 의무란 투자자(펀드 가입자) 자산을 관리할 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법적 책임을 의미한다. 운용 자금이 자체 자금이 아닌 주주권 행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본시장법 제87조(의결권 등)에서 운용사 등 집합투자업자에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집합투자재산에 속하는 주식 의결권을 충실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금융당국 시각도 비판적이다. 금융감독원은 13일 ‘기업·주주 상생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열린 토론’을 열고 자산운용사에 수탁자로서 선관주의 의무를 외면한 채 안건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비판하며 의결권 모범·미흡사례 적시,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 개선 등의 방침을 내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토론 후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4월 말이나 5월 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가 잘 된 사례와 아쉬운 사례를 분류하고 기준에 대해 안내할 것이다”며 “필요하다면 연기금 등과 공유하고 문제가 있는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통제하는 등 노력을 해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흐름이 주주가치 제고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의 소극적 의결권 행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행사 시스템 개선과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연임 금융투자협회 박사는 “의결권 행사 전담팀, 조직 의문화, 다양한 전문 인력 확보 등 전문성을 강화하고 독립적인 사내 의결권 행사위원회 설치, 의결권 행사 전 기업과 자산운용사 간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자산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 등 상세한 내용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해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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