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하던 업계에 둥지트는 금감원 직원들… 감독기관 명성 ‘옛말’

2025-03-16     한재희 기자

최근 5년 간 금융감독원을 떠나는 직원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엔 주로 로펌으로 거처를 옮겼다면 최근 들어서는 피감 기관인 금융사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근래에는 빠르게 성장한 가상자산 업계로 옮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감원 조직 안팎에선 높은 업무 강도와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퇴직자가 꾸준히 나올 것이란 자조감이 높다. 감독 업무를 담당하던 금감원 직원이 피감기관으로 이동하면서 당국의 검사‧감독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을 떠나 금융권, 로펌 등에 취업하는 직원들이 잇따르고 있다. / 뉴스1

16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금융감독원을 떠나기 위해 인사혁신처의 취업 심사를 받은 4급 이상 직원은 52명에 달한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된 이찬우 전 수석부원장과 한국금융연수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준수 전 부원장, 금융보안원 원장으로 선임된 박상원 전 부원장보 등 임원 5명을 포함해 1직급 1명, 2직급 23명, 3직급 16명, 4직급 7명 등이다.

금감원 4급 이상 직원들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전 5년 동안 일했던 부서나 기관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으로의 재취업이 3년간 제한된다.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재취업하려는 기관에서 맡는 업무가 퇴직 전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거나 취업 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다.

올해 2월에만 6명이 취업 심사를 받았다. 취업 불가 결정이 난 2급을 제외한 다섯명이 이달 자리를 옮긴다. 대부분 금융권으로 재취업했다. 직원 2명은 빗썸의 전무 직급으로 이동했고 팀장급 직원 1명은 신한금융지주 팀장으로 출근한다. 신한지주가 상임감사 등에 금감원 출신을 선임한 적은 있지만 실무자급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팀장급 직원은 현대커머셜 경영지원 부본부장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1명은 롯데칠성음료 사외이사가 된다. 지난 2월뿐 아니라 1년 간 추이를 보아도 금감원 특성상 금융권 취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저축은행 상근 감사, 보험사 임원, 자산운용사 임원 등 업종도 다양하다.

금융권에서는 감독당국 퇴직자들이 보유한 노하우와 인적 자원이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내부통제 강화는 물론 금융당국의 검사가 깐깐해질수록 ‘금감원 출신’을 더욱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사모펀드 사태와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을 거치면서 저축은행과 보험 등 2금융권뿐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전언이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업계로 이동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가 크게 성장하면서 금융당국이 고강도 검사를 진행‧예고한 만큼 이를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다.

방패막이 역할 논란 여전… 금감원 위상 '흔들'

 일각에서는 금감원 출신 전관 영입을 두고 내부 정보 유출 우려와 전관을 활용한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이 갖고 있는 금융 전반에 대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서 “금감원에서 하던 업무가 아니더라도 해당 직원이 가진 노하우와 정보가 충분히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이기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발표한 ‘금융당국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보면 금융감독원 출신 임원이 취임한 이후 금융회사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금감원 내부에선 과거 금감원이 가졌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과 함께 직원들의 충성도 등 조직에 대한 달라진 태도를 체감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무를 담당하던 유능한 직원들이 잇따라 퇴사하면서 조직 내 분위기도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직 전 사기업인 금융회사와 연봉만 비교해봐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라면서 “업무 강도와 처우 등을 균형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상황에서 퇴직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