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뛰어넘는 기업銀 비위… 김성태 행장 ‘책임론’ 불가피
김성태 기업은행장이 900억원에 달하는 금융사고에도 책무구조도 실행에 따른 최고경영자(CEO) 제재 대상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당대출이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드러나면서 ‘책임론’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 이후 내놓은 쇄신안을 두고 그 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년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시스템 개선뿐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조직문화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1일 금융당국 등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7년에 걸쳐 882억원의 부당대출이 발생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던 의혹까지 받는 기업은행에 내달 검사 의견서를 송부할 예정이다. 검사 의견서는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제재 대상 기관과 임직원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은행의 부당대출 규모는 역대급이다. 지난해 적발된 우리은행의 전임회장 부당대출 금액인 730억원을 웃도는 882억원이다. 기업은행이 최초 공시한 240억원 보다 약 4배가량 많다. 기업은행이 사건 파악을 안이하게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루된 직원 수를 보면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는 변명도 어렵게 됐다.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과 그의 가족, 거래처 관계자 등 사적·공적 이해관계자 28명이다. 조직 안팎의 공모와 내부통제 구멍으로 부당대출이 수십건 실행됐다. 이들은 부당대출을 돕고 대가성 금전을 받았고 23명의 임직원이 부당대출과 관련 골프접대를 받은 사실도 적발됐다.
기간도 길다. 2017년부터 지난해 적발되기 전까지 7년여에 걸쳐 허위 서류 작성부터 미분양 상가 부당 대출 알선 등 부정행위가 조직적,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기업은행의 건전성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2025년 2월 말 기준 이번 금융사고 대출잔액은 535억원 수준으로 이미 17.8%(95억원)은 부실화 됐다.
기업은행은 부당거래 적발·조치 관련 부서에서 이런 비위행위 제보를 받고 금융사고를 인지하고도 조사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특히 금감원에 사고 발견 경위와 금품수수 내역 등 일부 내용을 누락해 축소했고 관련 부서 직원들은 부서장 지시로 관련 사건 파일 271개와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했다.
메신저 기록을 삭제한 시점은 금감원 검사가 진행 중이던 올해 1월이다. 기업은행 내 전반적으로 내부통제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지난 2023년부터 기업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성태 행장의 ‘책임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올해부터 시행된 책무구조도 제재 대상에선 빠질 거란 진단이다. 부당대출이 일어난 시기가 지난해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우선 취임 이후 강조해왔던 내부통제 강화가 단순히 ‘구호 외치기’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 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최근 은행권의 금융사고가 점증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은행도 경각심을 갖고 금융사고 예방에 적극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선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고도화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지만 결국 허울뿐이었던 셈이다.
지난 26일 발표한 기업은행의 쇄신안을 두고도 면피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번 부당대출 관련자를 엄벌하고 조직문화를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이 부족해서다.
쇄신안에는 친인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부당대출 방지 확인서를 받겠다는 방침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다른 은행에선 이미 진행중인 안인 데다 이를 추진할 쇄신위원회 인적 구성에 대한 별다른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부당대출을 인지한 이후 시간이 지났음에도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제재 결정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제재 조치안을 만들면 제재심의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제재를 확정한다.
성수용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는 “지난 2022년, 2023년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의 대규모 금융사고 이후 다양한 내부통제 강화 정책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기업은행이 이같은 대규모 금융사고를 당시에 적발하지 못했다는 데 첫 번째 문제가 있다”면서 “스무명이 넘는 전현직 직원이 공모했다는 점 등을 봤을 때 기업은행 내부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은행은 사고자를 비롯해 조직 구성원에게 적절한 보상과 책임을 물어야만 내부통제 조직문화를 조직내 각인시킬 있을 것”이라며 “향후 내부통제 강화는 CEO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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