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거래소, 가상자산 법인고객 유치戰… 자존심 건 물밑 싸움
빗썸-국민은행, 코빗-신한은행, 시장 선점 안간힘
가상자산 시장의 법인 참여가 허용되면서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법인 회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 코빗은 최근 법인회원 가입 접수를 시작했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4월부터 비영리법인, 학교법인 등을 대상으로 실명계좌 발급을 허용함에 따라 본격적인 법인 고객 유치를 위한 준비에 나선 것이다.
오는 3분기부터는 상장법인의 진입도 허용된다. 시범 운영 대상은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법인 2500개사와 전문투자자 등록법인 1000여곳이다.
거래소들이 법인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선 배경에는, 이를 계기로 수익 모델을 고도화하고 시장 안정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개인 투자자에 비해 법인은 거래 규모도 크고 장기적 투자를 선호, 시장에 미치는 유동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법인 회원 모집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금융지주 계열 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빗썸과 코빗이다. 빗썸은 KB국민은행, 코빗은 신한은행과 각각 실명계좌 제휴를 맺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일찍이 가상자산 수탁 시장에도 진출해 법인 시장을 준비한 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법인의 시장 참여가 허용되면 투자 안정성과 회계 투명성 등의 요건을 맞추기 위해 전문 수탁업체와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빗은 지난 2021년 신한은행과 가상자산 수탁 업체 한국디지털자산(KDAC)를 설립하며 협업을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신한벤처투자를 통해 KDAC 증자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빗썸과 제휴를 맺은 국민은행은 지난 2020년 블록체인 기술 기업 해치랩스 등과 함께 수탁사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다만 빗썸은 KODA와의 협력 여부는 아직 논의중인 상태라 밝혔다.
국내 1위 거래소인 업비트의 경우, 제휴 은행인 케이뱅크와 연계된 별도의 수탁사가 없다. 현재 모회사인 두나무가 고객 자산을 직접 보관하고 있다. 현행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VASP)는 자체적으로 가상자산을 보관·관리할 수 있으며, 국내 주요 거래소들도 자체 인프라를 통해 내부 수탁 구조를 운영 중이다.
업비트와 케이뱅크 간 실명계좌 계약은 오는 10월 종료 예정으로, 업비트가 수탁업 인프라를 갖춘 은행으로 실명계좌 제휴처를 변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유력한 제휴 후보로 거론된다.
하나은행은 지난 2023년 글로벌 수탁사 빗고(Bitgo)와 제휴를 맺고 한국 법인을 세웠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취득한 국내 수탁사 비댁스(BDAC)와 협력해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는 고객 자산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으며, 두나무가 직접 관리한다”며 “다만 앞으로 나올 금융위원회 세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법인이 보관 장소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국내 5개 원화 거래소 중 코인원과 고팍스는 아직 법인 영업을 개시하지 않은 상태다. 코인원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과 지속적으로 논의 중인 상황”이라며 “다만 현재 비영리법인 외 기관투자 등에 대해서는 그 시기나 방법적으로 구체화된 사항이 없는 만큼, 정책적인 상황을 지켜보며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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