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상법개정 놓고 정부와 엇박자… “개정안 거부, 효율성 저해”

기재부 등에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 고려사항 의견서 전달 “지배구조 선진화, 반기업 아닌 시장주의 원칙에 따른 것”

2025-03-28     윤승준 기자

금융감독원이 정부의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움직임에 다시 반기를 들었다. 거부권 행사 시 자본시장 선진화 의지 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상법 개정안이 반기업 정서라는 점에서 반박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2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상법 개정안이 장기간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된 현재로서는 재의요구를 통해 그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에너지 소모 등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 경영자들의 혁신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은 28일 정부에 “상법 개정안이 장기간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된 현재로서는 재의요구를 통해 그간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효율성을 저해한다”며 재의요구권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이복현(사진) 금감원장이 지난 19일 열린 주요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의견서를 보면 우선 ‘자본시장 선진화’ 의지 시그널이 꺾일 수 있는 점을 지적했다. 시장이 주주 보호 이슈를 정부 의지에 대한 가늠자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룰→자본시장 선진화’에 대한 분명한 시그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금감원은 “자본시장 투자자들은 보호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소액주주 보호 강화를 ‘공정한 경쟁의 룰’ 정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내증시 저평가 원인인 기업지배구조 및 투자자 보호 미흡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인용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시장접근성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머징마켓(신흥국시장) 국가 중 지배구조 관련 부정적 평가를 받은 국가는 한국과 중국 2곳이었다. 

재의요구권 행사가 자칫 정부의 투자자 보호 의지에 역행하는 신호로 오해돼 밸류업 동력 상실, 대외 신인도 하락, 국내증시 외면 및 투자유치 감소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설명이다.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과 관련, "국익 부합 여부로 경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관세정책 등으로 금융시장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재의요구권 행사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다는 점도 들었다.

금감원은 “장기적으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경쟁촉진, 혁신 촉발 측면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단기적으로는 긍정·부정 양 측면이 모두 존재하나 과도한 형사화 방지 장치, 합병 등 거래의 합리적 절차 마련, 사외이사 보호 제도 도입 등 제도적 보완을 통해 부정적 영향을 상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기업지배구조 선진화 이슈가 반기업 정서라는 점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경쟁의 룰 왜곡을 바로잡아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효율적 자원 배분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경쟁 촉진과 성장·혁신 동력을 확보하자는 시장주의적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감원은 “기존 질서와의 조화 등 협의․조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기업 대 반기업, 성장 대 분배 등 갈등의 문제로 접근하면 합리적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주주 충실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법원 판결례를 통해 형성되기 전까지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법원 판결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금감원 수장인 이복현 원장은 상법 개정안 찬성에 목소리를 거세게 높이고 있다. 특별한 외부 일정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없음에도 이날 오전 비공개로 열린 F4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례적이다. 26일에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은 어떤 법이 더 맞느냐가 아니고 이미 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금융당국을 이끄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상법 개정안 반대파다. 김 위원장은 26일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 대안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을 우선했으면 좋겠다거나 자본시장법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말해왔다”면서 상법 개정보다는 그 대안적 성격으로 정부가 마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상법 개정안 거부권 시한은 내달 5일까지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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