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에 대출자들 울상인데… 예대차 확대로 배불리는 은행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재지정 여파 대출제한 지속

2025-04-02     한재희 기자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말 잠시 쉬어가긴 했지만, 2월 급증세가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칠거란 분석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 및 재지정과 이에 따른 신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 등의 잔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기준금리 인하로 예금금리와 함께 동반 하락이 예상됐던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모니터링 강화로 분위기를 바꿨기 때문이다. 예금금리는 내리면서 대출 금리는 제자리 걸음이라 은행들만 웃는 형국이다. 

시중 5대은행 본사 /조선DB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38조551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1조7992억원 늘었다. 지난 2월 3조931억원이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월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가계대출 규제로 4762억원 줄어든 바 있다.

가계대출 증가는 토허제 해제와 기준금리 인하가 맞물린 결과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일대에 5년째 적용 중이던 토허제 해제를 발표했다. 이 소식에 ‘묻지마 매매’까지 등장하며 해당 지역은 물론 주변 지역의 집값이 치솟고 가계대출도 급증했다. 

집값 상승과 대출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자 서울시는 35일만에 다시 토허제를 확대, 재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대출을 받으려던 수요자들만 ‘패닉’에 빠졌다. 매매 계약을 하고 대출을 실행하려고 하는 사이 토허제가 재지정되고 은행들이 대출 문을 걸어 잠가서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지난달 28일부터 유주택자의 투기지역 소재 주택구입목적 신규대출 취급을 제한했다. 대상 지역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와 용산구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지역에 한해 다주택자의 구입 목적 주담대와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은행의 급작스런 대출 중단은 금융당국의 태도변화에 기인한다. 대출금리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은행들에게 ‘금리 인하 여력’을 강조하던 금융당국은 토허제 해제 이후 대출시장이 다시 들썩거리자 은행은 물론, 보험 등 2금융권에도 추가적인 자율 규제를 예고했다. 

지난달 2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관련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혼란스럽다는 지적에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구간에서 가계대출 증가를 막으려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국 은행의 심사를 통해 변수를 제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날 임원회의에서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 및 거래량 단기 급등에 따른 영향이 시차를 두고 3월 후반부터 가계대출에 점차 반영되고 있다”면서 “지역별 대출 신청·승인·취급 등을 보다 면밀히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2월 급증한 대출 영향이 4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통상 계절적 요인으로 4월엔 이사 수요가 많아 가계대출이 늘어난다. 여기에 토허제 영향이 시차를 두고 반영될 수 있다. 주담대 신청부터 실행까지 통상 2개월 정도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사이 예대금리는 더 벌어졌다. 대출금리는 그대로지만 예금금리는 하락하면서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금리 인하기에 접어든터라 예금금리를 높게 유지할 이유가 없다.

예대금리차란 각 은행의 가계대출금리에서 수신금리를 뺀 격차다. 은행들이 이자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차이가 클수록 돈을 맡긴 예금고객에게는 적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는 대출고객에게는 많은 이자를 받는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는 지난 2월까지 6개월 연속 확대됐다. 지난 2월 기준 5대 은행의 정책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 평균은 1.38%포인트다. 이는 2022년 7월 이후 가장 큰 격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채권금리 하락 등으로 조달 부담이 낮아져 수신 영업을 공격적으로 할 이유가 없어진 상황에서 예‧적금 금리를 굳이 높게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올 상반기까지 대출 금리 인하가 더디게 이뤄지면 예대금리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여신(대출)과 수신(예적금) 상품 모두 금융소비자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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