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잡음" 발언에 수세 몰린 김병주 MBK 회장… 사재 출연 언제?
투자 연례 서한에서 ‘불가피한 조치’ 언급하며 사태 책임 언론에 돌려 정치권·금감원·피해자, 김 회장에 사재 출연 등 구체적 사태 해결 촉구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약간의 잡음(Some noise)’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을 시작으로 정치권, 투자자들이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 등 보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달 24일 투자자들에게 발송한 연례 서한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와 관련해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운전자본 유동성 위기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면서 “언론에서 약간의 소음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홈플러스가 지난달 4일 법정관리 신청한 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의 인식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지난달 18일 국회의 ‘홈플러스 사태 긴급현안 질의’ 출석 요구에 불응했고 MBK와 홈플러스의 ‘채권 사기 발행 의혹’에 대해서도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 회장은 연례 서한에서 “우리의 모든 포트폴리오가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며 “(홈플러스와 관련한) 여러 이해관계자 중 일부는 주주와 비교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전했다.
홈플러스 우선주보다 보통주에 투자한 기관투자자의 불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자이고 MBK와 캐나다연금(CPPIB), 캐나다공무원연금(PSP Investments),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은 보통주에 투자했다.
김 회장의 이러한 현실 인식에 ‘안이한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홈플러스 납품업체와 임대인, 채권 투자자, 채권을 판매한 금융사 등이 피해를 호소하며 홈플러스 경영진을 고소한 상황에서 홈플러스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최대주주가 기관투자자 피해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점에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김 회장의 서한에 대해 “성사될 수 없는 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전액 변제 발표로 시장과 투자자를 교란시켰고 사태를 상당히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구체적인 사재출연 계획을 조속히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 야 3당은 공식적으로 김 회장에게 10일까지 구체적 변제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진정성 없는 조건부 약속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국회의 직무 유기이고 국민의 권리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재원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온 국민을 기만한 죄를 청문회를 통해 반드시 묻겠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MBK·홈플러스 해명과 다른 정황 발견”
금융당국 입장도 강경하다. 금융감독원은 홈플러스 신용등급 강등 직전 MBK가 법정관리 신청을 준비한 가능성을 지적하며 대주주가 사재 출연 등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한 상황이다.
함용일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1일 열린 ‘자본시장 현황 관련 브리핑’에서 “신용평가사·신영증권·MBK 검사와 관련해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인지, 기업회생 신청 경위 및 시점 등에서 그간 MBK와 홈플러스 해명과 다른 정황이 발견되는 등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기 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ABSTB를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하고 즉시 전액 변제하는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회생계획안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고 이는 시장과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스스로 약속한 전액 변제, 대주주 사채출연 등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분노는 홈플러스에서 MBK로 번질 전망이다. 3일 홈플러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까지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 홈플러스가 피해 회복 대책을 밝히지 않을 경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ABSTB 발행 4019억원 중 개인투자자 구매액은 1777억원으로 절반 정도 차지한다.
비대위 측은 “해외로 도피한 ‘도망자’ 김병주 회장은 잡음이 발생했다고 언론에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며 “사태 해결에 대한 성의 있는 대책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촉구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