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잡고 보니 설계사가 주도… 내부통제 구멍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 1.2조… 역대 최대 현대해상, 교보생명 등 대형사 설계사도

2025-04-08     전대현 기자

#. 보험판매대리점(GA) '한마음에셋' 소속 보험설계사 A씨는 입원을 하지 않았음에도 입원치료를 받은 것 처럼 병원으로부터 허위 입퇴원 확인서 등을 발급받았다. 허위 서류를 제출한 A씨는 보험사로부터 총 8793만원을 부당 편취했다. 

#. 현대해상 소속 보험설계사 B씨는 지인들과 공모해 빗길에 미끄러져 경미하게 파손된 승용차를 포크레인을 이용해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했다. 이후 보험사에 허위 내용으로 사고접수를 해 총 4352만원의 보험금을 뜯어냈다.

보험설계사가 주도하는 보험사기 사건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 / DALL-E

보험설계사가 주도하는 보험사기 사건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 주로 지인과 공모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한병병원 및 의원과 작당해 진단서를 위·변조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부당 편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사 조직범죄에… 보험사·GA 무더기 제재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일 금감원은 보험사 및 GA 14곳에 대한 제재내용을 공시했다. 여기에는 ▲교보생명 ▲현대해상 ▲한화손해보험 등 대형보험사 소속 설계사뿐 아니라 GA코리아, 인카금융서비스, 한마음에셋 등 GA 11곳도 포함됐다. 적발된 설계사만 총 35명에 달한다.

이번 금감원이 공시한 제재 내용은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형사절차 과정을 마친 건들이다. 편취금액에 따라 부당 수령한 보험금이 500만원 이상인 경우 설계사 자격 등록을 취소하고, 그 이하의 경우 구간별로 업무 정치 조치를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공시는 법원에서 확정판결 난 사건에 대해 행정조치 일환으로 일괄적으로 공시한 사안"이라며 "시행세칙에 따라 편취 금액별로 업무정지 및 등록취소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설계사들의 보험사기가 판치면서 보험사기 적발액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은 1조1502억원으로 2022년 처음 1조원을 돌파한 이후 지속 증가세다. 이중 보험사기 혐의가 적발된 보험 관련 업종 종사자는 2022년 1763명에서 지난해 2160명으로 증가했다.

적발 유형별로 보면 의원, 요양병원 등 관게자들과 공모해 진단서 위·변조 등을 통해 보험금을 과장 청구하는 사고 내용 조작 유형이 적발 금액의 58.2%로 가장 많았다. 이어 허위 사고 20.2%, 고의 사고 14.7% 순으로 집계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설계사들은 병원 내 상주하면서 보험 가입이나 청구를 직접 돕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병원과 친분을 쌓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안다"며 "해당 영업행위가 불법은 아니지만 의료기관과 공모해 보험사기를 벌일 가능성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규모가 작은 요양병원이나 의원의 경우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모집하고 병원과 결탁해 과잉 진료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를 일일이 보험사나 수사기관이 통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조직적 보험사기로 인해 보험금 누수가 커지자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보험금 과다지급으로 인해 보험료 인상 및 보험금 지급제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기범도 재위촉… 영업제일주의 관행 비판

문제는 보험사들이 제제이력이 있는 설계사를 다시 위촉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이 실시한 '설계사 위촉 통제 실태 조사' 결과 총 105개 회사(보험사 32개사, GA 73개사) 중 73개 회사가 제재 이력이 있는 설계사도 위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사와 GA 중 70%는 제재 이력이 있는 설계사를 위촉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기 이력이 있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마땅한 제재 조치가 구비되지 않아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도 이같은 사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영업 제일주의 관행'을 작심 비판했다. 이세훈 부원장은 "일부 GA의 일탈적 행위로 인해 GA업계 전체가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는다"며 "특히 불법행위 연루 설계사들이 다른 회사로 이동해 보험영업을 혼탁하게 할 우려가 크므로 위촉 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보험사기를 막을 만한 추가 조치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향후 생명·손해보험협회 등과 설계사 위촉 절차를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중 내부통제가 취약한 보험사와 대리점을 우선 검사 대상으로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다수 계류중이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기에 가담한 보험설계사는 별도의 행정처분을 거치지 않고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별도 행정조치 없이 즉각 시장에 퇴출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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