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보다 3천배 많은 제일은행의 중도해지 수수료… 무슨 일?
"회계 방식의 차이"라지만… 상품 신뢰도 문제 지적도 적지 않아
1300만원 vs. 382억원
지난해 KB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이 각각 거둔 신탁 상품의 중도해지 수수료다. 덩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후자가 국민은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전체 수수료 수익은 국민은행이 제일은행보다 4배 가량 많은 반면 중도해지 수수료만큼은 제일은행이 국민은행보다 3000배 이상 많다.
이는 회계 방식 차이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설명이다. 다만 중도해지 수수료가 그만큼 많다는 건 해당 은행과 상품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14일 금융감독원 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하나‧우리‧SC제일은행)의 신탁 중도해지 수수료는 468억2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177.4% 증가한 규모다.
은행별로 보면 제일은행이 382억74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우리은행 33억4500만원, 하나은행 28억8000만원, 신한은행 23억1700만원, 국민은행 1300만원 등이다. 제일은행의 중도해지 수수료가 압도적으로 많다.
신탁 수수료 전체 이익으로 보면 국민은행이 9319억82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지난해 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상품(ELS) 판매 중단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ETF(상장지수펀드), ELF(주가연계펀드), ELT(주가연계신탁) 상품 등의 취급을 늘리면서 전년보다 소폭 증가한 수수료 이익을 냈다.
뒤를 이어 우리은행이 7946억7100만원, 신한은행이 7939억2700만원, 하나은행이 7526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중도해지 수수료가 가장 많은 제일은행의 전체 수수료 이익은 2310억9100만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중도해지 수수료의 차이가 은행별 회계 방법이 달라 나타나는 ‘착시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신탁 상품에 많이 들어가는 ETF만 봐도 그렇다. 만기가 별도로 없는 ETF 특성상 은행은 임의로 만기를 정해두고 판매시 선취보수 수수료를 뗀다. 그리고 해당 상품의 수익률이 고객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유지 또는 매도할 수 있는 옵션을 둔다. 이 때 만약 고객이 매도를 선택하면 상품의 중도해지 사유가 발생, 중도해지 수수료를 내게 된다.
시중은행들은 고객에게 별도의 해지 수수료를 받지 않고 선취보수 수수료 가운데 일부를 중도해지 수수료로 정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임의로 정한 만기에 도달하기 전 해지된 만큼, 선취보수 수수료에 포함됐던 운용수수료나 기타 수수료 등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부분도 발생한다. 각 은행의 중도해지 수수료 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국민은행은 이미 받은 선취보수 수수료에서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부분과 중도해지 수수료 부분을 상계해 처리한다. 중도해지 수수료가 10원,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수수료가 20원이라고 하면 중도해지 수수료는 인식하지 않고 남은 10원을 수수료 비용으로 처리한다.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부분이 많은 경우 중도해지 수수료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셈이다.
반면 제일은행은 중도해지 사유가 발생하면 최초 받은 선취보수 수수료를 전액 중도해지 수수료로 산입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은행보다 훨씬 많아 보일 수 밖에 없다. 회계 방식의 차이라는 설명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 해도 과도한 수수료 차이는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 고객이 상품에 만족하지 못해 신탁 유지율이 낮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은행에 대한 신뢰도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특정 신탁상품의 경우, 고객의 이익보다는 수수료를 수익원으로 삼는 구조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제일은행 측은 "실제 만기가 없지만 ETF의 만기를 명목상 정해놓는데, 타행에 비해 당행은 10년으로 길게 정해놓았고 이에 따라 외형적으로 중도해지 수수료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며 "회계상 처리일 뿐 실제 나머지 부분인 선취보수를 합하면 고객으로부터 받는 선취보수 수수료 총액이 같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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