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세에 어지러운 車업계
현대차 “가격 동결로 성장세 유지” 한국GM은 침묵…관세대응 쉽지 않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2일(현지시각) 시행했다. 이에 일부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 수출을 중단하거나 현지에서 신규 주문을 받지 않는 등의 강경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을 주요 수출국으로 삼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과 GM한국사업장(이하 한국GM)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 동결'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대차는 6월 2일까지 미국 내 소매 가격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CEO는 “현대차는 미국 내 소비자를 위해 권장 소매가를 동결하기로 했다”며 “현재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으며 1분기 기록적인 판매를 계속 잇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준공식을 진행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렌트 아메리카(HMGMA)를 언급하며 “현대차는 신규 생산 시설을 갖추며 시장 상황에 신속하고 전략적 대응이 가능하다”며 “이를 적극 활용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현재로선 가격 동결 외 다른 전략 없어
현대차의 가격 동결은 현지 판매량과 점유율 상승세를 잇기 위한 전략이다. 관세 부과 직후 가격을 인상할 경우 소비자 반발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까지 훼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에 민감한 미국 시장 특성을 고려해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보다 인센티브를 줄이는 등의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측은 현재로서는 가격 동결 외 다른 전략은 세우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미국으로 수출된 물량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현지 주문량 소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가격 동결 기간 동안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 방안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현지 공장 또는 해외 공장 생산량 조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에 현대차는 생산 물량 조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지 및 해외 공장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부품사 등 협력사 생산 조절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이어 완성차 제조사는 통상적으로 완성차 제조사는 협력사와 1년 단위로 생산량을 조정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생산량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한국GM은 침묵… 국내 생산은 유지
제너럴 모터스(GM)도 관세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물량의 46%가량을 해외 공장에서 들여오고 있어서다. 회사는 한국과 멕시코,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집트, 중국 등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미국 물량 대부분은 지리적 요건이 유리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조달하고 있다.
한국 역시 GM의 주요 수출 기지다. 지난해 한국GM 창원 공장과 부평 공장은 50만대가량을 생산했으며 이중 41만8782대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GM 전체 수출량의 88.2%에 달하는 수준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관세 부과로 한국 공장 생산 물량이 조정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하기로 했던 관세를 유예해서다.
회사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한국 공장은 기존과 동일하게 운영한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GM은 최근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와 로버트 트림 노사협력 부문 부사장,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GM 지부장 등이 자리한 ‘비전트립’을 통해 한국 공장은 현재와 같이 생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달라고 주문했다.
본사와 달리 한국GM은 관세 대응 전략에 대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회사는 향후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현재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 생산량 조정 등 그 어떤 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각기 다른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미국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을 동결할 방침이다. 또 스텔란티스그룹과 포드 등은 현지 재고 및 현지 생산 물량을 확대해 가격 인상을 최대한 미루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거나 판매를 중단을 선언한 제조사도 있다. 이탈리아 슈퍼카 제조사 페라리는 현지 가격을 1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반적인 제조사와 달리 주문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다.
미국 시장에 연간 43만대가량을 판매하는 랜드로버는 4월 한 달간 미국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랜드로버는 수출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현지 딜러사와 거래 조건을 재조정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닛산은 현지 주문을 중단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포트폴리오의 노후화로 인한 경쟁력 저하로 현지 수익성이 악화되자, 관세 부담보다 주문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