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지자체 묶인 가상자산 수십억… 법인 매매 허용에 새 주인 찾나
가상자산 거래소, 법집행기관 계좌 개설
검찰, 경찰, 지방 자치단체 등 국가 기관의 가상자산 매매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허용되면서 거래소들이 이들 법집행기관을 상대로 계좌 개설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간 몰수하거나 압류했지만 딱히 활용하지 못했던 가상자산들이 처분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10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과 코빗이 지난 8일부터 국세청, 검찰, 지자체 등 법집행기관의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계좌 개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금융당국은 2분기 비영리법인부터 시작, 법인들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을 허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코빗은 지난 2월부터 서울특별시, 포천시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법인 가입 절차를 진행해왔다. 거래소들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만큼, 정부 관련 기관 명의의 계좌 개설부터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다수의 정부 관계 기관들은 이미 가상자산 거래소에 법인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원화 거래소에 개설된 정부 기관의 법인 계좌는 47개로, 이중 업비트에 39개가 몰려 있다.
국세청의 경우 체납자들의 가상자산을 추징할 때 거래소로부터 해당 계정의 자산을 직접 이전받아 이를 다시 매각하는 방식으로 약 1000억원 상당을 환수하기도 했다.
다만 여타 정부기관의 경우, 법인계좌 개설과 매매가 국내법상 허용되지 않아 실제 매매에 나서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2022년 지방세징수법 개정으로 가상자산 이전과 매각의 법적 근거를 확보했지만, 현장에서는 실무적 제약으로 인해 관련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경기도만 해도 31개 시·군이 지난해 약 48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추심했지만, 공공망 보안 문제, 은행의 법인 계좌 개설 제한 강제 매각은 사실상 진행되지 못했다. 서울경찰청은 역시 이더리움 1059.9개(약 21억원 규모)를 압수·보관 중이지만, 거래소 계좌가 없어 처분 절차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매각을 위한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아 보유한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기 어려웠다. 이번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 개설이 열리면서 이제 마음만 먹으면 이를 팔 수도 있게 됐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법인 명의로 거래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공식 경로가 확대되면서 향후 체납 징수나 범죄수익 환수의 실효성이 높아질 수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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