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에 숨고른 한은… 역성장 전망에 힘받는 ‘5월 인하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미 상호관세 충격과 국내 정치적 요인으로 환율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져서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올해 2월 등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기준금리 완화 효과와 1분기 성장률, 미국의 관세 정책의 파급 등을 고려해 추가 인하 시점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라 다음 추가 인하는 5월이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75%로 동결했다. 올해 1월에 이은 두 번째 숨 고르기다. 기준금리 완화 기조로 방향을 바꾼 뒤 지난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씩 내렸고 1월 이후 2월에 또 한 번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번 동결 결정에는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상호관세 정책 발표 이후 지난 9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84.1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2009년 3월 12일 금융위기 이후 16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유예하고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자 원화 환율은 141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한 달 내 환율 변동 폭이 70원에 달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의 하방위험이 상당폭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관세정책의 강도와 주요국의 대응이 단기간에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며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나가되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월부터 큰 폭으로 불어난 가계부채도 동결 결정의 배경이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금리가 내리면 가계대출 증가에 불을 지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일시 해제 효과가 4월부터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가계부채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속도,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나 집행 시기 등도 결정을 거들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상보다 높은 관세로 물가 인상과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며 연준이 물가와 성장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출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5월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이 총재는 연준의 통화정책을 기계적으로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한미금리차를 더 벌려 환율 등 변동성을 자극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관심은 추가 인하 시점이다.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 지면서 시장에서는 5월 인하론이 힘을 받고 있다. 추가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날 경제 상황평가에서 “성장세가 지난 전망(0.2%) 보다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 관세정책, 대형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고성능 반도체 수요 이연 등 일시적 요인이 겹쳐 소폭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신성환 금융통화위원이 “경기 하방 속도와 관세 영향을 보면 성장이 생각보다 나빠질 수 있다며 큰 폭의 금리인하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0.25%포인트 인하 소수의견을 낸 것도 내달 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5월에도 동결을 이어가면 ‘실기론(失期)’에 직면할 수도 있다. 6월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통위가 없는 만큼 다음 기준금리 결정은 7월에나 가능하다. 2분기가 끝난 시점이어서 경기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됐으나 성장에 대한 하방 위험과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 요인들에 대한 통화당국의 경계 심리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며 “구체적인 추가 인하에 대한 시기는 다음 달인 5월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