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놓고 수성전 펼치는 시중은행… 상품·영업 강화 사활
하나·국민, AI로 운용 수익률 제고
향후 1000조원 시장이 될거란 전망이 나오는 퇴직연금을 놓고 금융사간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10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는 은행권과 새 고객을 유치하려는 증권 및 보험사의 피튀기는 물밑전쟁이 시작됐다. 아직은 은행의 완승으로 보이지만, 새 무기를 장착한 2금융권의 파상공격도 만만치 않다.
23일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비교 공시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12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28조9986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4% 증가했다. 14개 증권사의 퇴직연금 총액은 같은 기간 3.5% 늘어난 107조6188억원을 기록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확정급여(DB)·확정기여(DC)·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퇴직연금 계좌에 담고 있는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다른 금융회사 계좌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운데 1분기 퇴직연금 적립액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전년 말보다 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은행이 같은 기간 2.3% 증가했고 우리은행이 1.9%, 국민은행 1.6%. 신한은행 1.0% 늘었다.
현재 적립액이 가장 많은 곳은 신한은행이다. 1분기 말 신한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46조3974억원으로 국민은행 42조7627억원보다 3조원 가량 앞섰다. 하나은행이 41조2443억원, 우리은행 27조6017억원, 농협은행 23조9832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들이 비이자이익 성장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시장이 바로 퇴직연금 시장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 1000조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고객 확보가 곧 장기 수익으로 연결된다. 실물이전 제도 시행과 함께 은행들이 맞춤형 포트폴리오와 AI 기술 도입 등을 내세워 마케팅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최근 WM고객그룹 연금사업본부 내에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 협의체’를 신설하는 한편 ‘퇴직연금 AI 투자일임형 서비스’ 도입도 예고했다. AI 기술을 적용해 수익률을 보장하고 시장 상황에 맞는 운용전략을 펼치겠단 목표다.
하나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개인형 IRP의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서비스’를 선보였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자 성향에 따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자동 생성하고 그에 따라 IRP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는 서비스다. 특히 시니어 특화 브랜드인 ‘하나더넥스트’를 내세워 퇴직연금 시장 공략에 고삐를 죄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존 거점 점포에만 배치했던 연금전문가(168명)를 올해 전 영업점(555명)에 확대 배치해 연금 자산 관리와 전문 상담에 힘을 줬다. 농협은행은 국내 은행권 퇴직연금으로는 처음으로 DC‧IRP 고객 대상 ‘KIWOOM 미국양자컴퓨팅 ETF’를 출시하는 등 상품 차별화에 나섰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 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과 함께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이 여전히 전통 강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수익률 등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면 언제든 머니 무브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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