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백억대 주식부자… 오너家 미성년 3·4세 지분만 700억
현대百·효성·LS·대신증권 오너일가 자녀들 수십억씩 보유
대기업 총수 일가 미성년자 41명 그룹 계열사 지분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 가치만 700억원 수준이다.
미성년자 주식 소유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절세 편법 증여’란 점과 자금 출처를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은 채 대주주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서 대규모기업집단 88개 소속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지분 공시를 확인한 결과, 대규모기업집단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19세 미만 최대주주 친인척은 총 41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 자산은 지난 주말 종가 기준 700억4145만원이었다.
그룹별로 보면 현대백화점(미성년 친인척 4명)이 34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효성(5명)이 125억원으로 두 번째, LS(6명)가 91억원으로 세 번째였다. 이어 대신증권(4명) 67억원, 두산(1명) 22억원, 한국앤컴퍼니(3명) 13억원, 세아(3명) 11억원, KCC(2명) 11억원 등의 순이었다.
19세 미만 ‘주식 부자’ 1위는 현대백화점그룹 4세인 정다나(17)양이었다. 다나양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장녀로 현대그린푸드 주식 148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7월 정 회장으로부터 현대그린푸드 99만752주를 증여받으며 현대지에프홀딩스와 친오빠 정창덕씨에 이어 3대 주주에 올라섰다.
2~4위도 현대백화점그룹에서 나왔다.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의 아들인 정창욱(17)·정찬준(16)·정창윤(13)군의 주식 자산이 각각 66억원이었다. 이들 3명은 작년 7월 큰아버지인 정 회장으로부터 현대그린푸드 보통주 44만280주를 각각 증여받았다.
5위는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장남 양승주(14)군이었다. 대신증권 보통주 27만24주를 보유한 승주군의 주식 평가액은 25일 기준 47억원이다. 2020년 6월 1만5000주를 매입하며 관련 공시에 이름을 올린 승주군은 4대 주주에 올라서며 차기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 승주군의 동생이자 양 부회장의 딸인 양채유양(12)과 양채린양(9)이 보유한 주식액도 8억원에 이른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인서(18)양이 미성년자 주식부자 6위로 이름을 올렸다. 인서양은 효성중공업·효성·효성티앤씨·HS효성·효성화학 5곳에서 45억원어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인서양의 남동생이자 조 회장의 장남인 조재현(12)군은 21억원 규모의 그룹 상장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7~8위와 10위는 LS그룹 일가가 차지했다.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 장녀 구근희 씨의 손주인 이신행(17)군과 이주현(12)양이 각각 23억원으로 공동 7위였다. 이들은 ㈜LS에서 보통주 1만8000주를 보유했다. 9위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손녀인 박상정(18)양이었다. 상정양은 두산·두산에너빌리티·두산중공업 3곳에서 35만1910주를 보유했다. 25일 종가로 환산하면 22억원 수준이다. 10위는 ㈜LS에서 22억원어치 주식을 보유한 정유정(12)양이 차지했다.
미성년자 자금 원천 내용은 부실
대기업 총수의 미성년 친족이 주식을 보유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증여 또는 본인 소득으로 주식을 매입하면 된다. 문제는 ‘절세 편법’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주식 증여세는 원칙적으로 증여 전·후 2개월 평균 주가를 적용해 산출한다. 이후 주가가 급등하더라도 증여세를 더 내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일부 기업은 주가 호재 이슈 전 증여를 하며 절세하곤 한다.
일례로 현대그린푸드 주가는 정 회장이 작년 7월 5명의 친인척에게 주식을 증여했을 때 1만2200원이었지만 이후 11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며 연말에 1만5000원대를 찍었다.
주식 매입 자금 출처가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자금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 공시는 ‘상장회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보유비율이 1% 이상 변동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기업 총수 미성년 주주의 지분이 5% 미만이거나 0.9% 이하로 변동됐다면 자금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무방하다.
대신증권 오너 4세인 양승주군은 이달 1일부터 25일까지 7차례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서 공시를 내며 보통주 9만4684주(약 16억원)를 사들였으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 주식을 매입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14일 양홍석 부회장이 공시한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에서 취득자금 조성 경위로 ‘배당소득 및 증여’라고 밝힌 정도다. 배당소득으로 얼마를, 증여로 얼마를 마련했는지는 확인 불가다. 같은 예로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차녀인 구민기(19)씨는 3~4월 6차례 INVENI(인베니) 5130주(2억4455만원)를 매입했으나 현재까지 취득 원천 공시를 내놓지 않았다.
금감원은 일단 공시에 허위 내용만 없다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대주주 지분) 비율 변동을 보는 게 목적이고 취득자금 경로 공시는 중점 대상이 아니다”며 “허위 정보를 기재하거나 오픈(공시)하지 않고 숨겼다면 당연히 조사 대상이지만 (지분) 비율이 제대로 공시돼 있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매입시 자금 출처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정 금액 이상의 주식 매입에 대해선 공시를 의무화하거나 미성년자에 한해선 자금 출처를 별도로 검증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대주주 일가의 사익추구 가능성을 견제하고 시장 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