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낫네'… 퇴직연금 굴려보니 수익률 20% 넘어 [금융 AI혁신 ③]
AI 접목 로보어드바이저 퇴직연금 우선 적용… 수익률 제고 현재 글로벌 1.8조달러 규모, 2029년엔 2.4조달러 전망
금융투자회사들이 인공지능(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RA) 서비스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우선 눈독을 들이는 상품은 퇴직연금이다. 목돈을 장기로 굴려 높은 수익률을 올려야 하면서도 노후자금이기 때문에 손실을 내선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품 특성에 RA의 장점이 어우러져 차후 고성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할 전망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RA 일임업자로 선정된 증권사·자산운용사는 현재까지 12곳에 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사들이 출사표를 내고 참전을 선언했다.
퇴직연금 RA 일임 서비스는 퇴직연금 자산을 RA가 자동으로 운용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연금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지 않아도 AI 알고리즘이 고객 성향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리밸런싱을 수행하는 게 특징이다.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알아서 굴러가는 구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달 18일 퇴직연금 RA 일임 서비스 ‘M-ROBO(로보)’를 출시하며 깃발을 꽂았다. 투자자 연령, 성향, 목표수익률 등을 분석해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자동 설계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리밸런싱하는 서비스로 하나은행 등 퇴직연금 사업자 8곳에서 판매 중이다.
M-ROBO는 AI 기술과 전문인력의 경험·운용역량을 결합해 성과를 낸다. AI 알고리즘은 12개로 ▲테마배분 ▲전술적 전략배분 ▲인컴배분 ▲전략적 자산배분 유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일례로 전략적 자산배분에 속한 ‘마이올웨더 ETF’는 주식·채권·골드 골고루 담는 상품으로 1년 수익률은 지난 주말 기준 13.8%다. 전술적 자산배분의 ‘마이글로벌 모멘텀 ETF’는 금융시장 변화에 대응해 AI가 동적으로 미국주식, 미국외주식, 원자재, 골드, 중장기채권, 단기채권 등을 배분한다. 1년 수익률은 15.79%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28일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 ‘NH_DNA’를 출시하며 뒤를 쫓고 있다. 코스콤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에서 검증받은 16개 알고리즘을 선별해 상품 라인업을 구성했다. 수익률 제고를 최우선으로 여러 RA 제휴사와 논의하고 자문받으며 RA 알고리즘 전략을 개발했다. ‘변수 중심의 알고리즘 설계’가 대표적 전략 중 하나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쿼터백자산운용·디셈버앤컴퍼니 2곳과 제휴를 맺고 모바일앱에서 고객들에게 RA 일임 서비스를 판매 중이다. 연내 자체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한다. 한국투자증권도 디셈버앤컴퍼니과 제휴를 맺으며 전 세계 선별된 ETF 상품에 분산 투자하는 방식 등으로 구성된 RA 포트폴리오 상품을 판매 중이다. 자체 서비스 출시 시기는 12월(잠정)이다.
퇴직연금 RA 일임 수익률 평균 10~11%
아직 3곳 정도만 퇴직연금 RA 일임 서비스를 정식 출시한 상태지만, 테스트로 돌려 본 수익률이 심상치 않다보니 기대감도 무르익고 있다.
코스콤 RA 테스트베드에 따르면 증권사 9곳(미래에셋·한투·NH·삼성·KB·신한·대신·교보·한화)이 공시한 150개 포트폴리오의 평균 연환산 수익률은 11.52%로 최근 5년간(2019~2023년) 전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 2.42%를 약 10%포인트 웃돌았다. 자산운용사 3곳(미래에셋·한투·쿼터백)의 포트폴리오(111개) 연환산 수익률도 평균 12.72%에 달했다.
수익률이 20%를 넘어선 포트폴리오도 적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마이골드자원배분_ETF_P_적극투자’의 연환산 수익률이 28.22%로 가장 높았고, NH투자증권의 ‘NH_DNA 퇴직연금_FinNest_P_적극투자형’이 24.93%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20%대 수익률을 올린 상품만 10여개에 달한다.
퇴직연금 시장의 잠재력이 큰 만큼 RA 일임 서비스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427조2000억원으로 전년(382조3000억원) 대비 11.7% 늘어났다. 최근 10년간 매년 10%대 성장세다. 2035년엔 10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RA 자체 성장세도 크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10월 1조8000억달러(약 2569조원)이었던 글로벌 로보어드바이저 운용금액(AUM)은 2029년엔 2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인하우스 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하며 자산 관리 고도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고객 자산을 더 잘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미국의 RA 시장이 퇴직연금 기반으로 성장한 만큼 기대할 만 하지만 마케팅 수단으로 남용돼선 안 되고 고객 자산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효능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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